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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위기의 신흥국, 가혹한 IMF 대신 中에 손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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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터키·베네수엘라 등 IMF지원 거부 몸부림… 中 일대일로 앞세워 침투, 빚더미 우려도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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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 위기를 겪는 신흥국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긴축이라는 가혹한 조건은 물론 민주주의 강화 등 내정에도 간섭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틈을 노려 신흥국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중국 자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독(毒)이 돼 돌아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IMF는 경제 주권 뺏는 일"

최근 리라화 가치 폭락 등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터키의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은 지난 16일 6000여명의 국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콜(전화 설명회)에서 "자본 통제 관련해 어떤 계획도 없다"며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이날 IMF에 대한 지원 요청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일축했다.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것이다.

터키가 IMF를 꺼리는 이유는 IMF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예산 삭감, 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 구제대상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과도한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IMF 요구에 따라 복지 등 재정 지출을 줄이고, 공공 서비스 요금과 세금을 올리면 국민 반발이 커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도 흔들릴 수 있다.

터키는 대신 독재적인 정치 환경이 비슷한 중국, 러시아, 이란 등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단교로 고립됐던 카타르는 이미 지난 15일 150억달러(약 16조8700억원)의 직접 투자를 약속했다. IMF가 달갑지 않은 나라는 터키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IMF로부터 500억달러(약 56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아르헨티나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달 새로이 출범한 파키스탄 정부도 IMF 구제금융 요청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신흥국의 IMF 외면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달 말 기준 IMF의 가장 일반적인 구제금융 지원방식인 대기성차관(Stand-by)을 받은 나라는 아르헨티나, 이라크, 자메이카, 케냐 단 4곳뿐이다. 이 가운데 실제로 자금을 융통한 나라는 아르헨티나와 이라크 정도다. 대기성차관을 받기 위해서는 IMF의 엄격한 구조조정 조건에 합의해야 하며, 분기별 감사도 받아야 한다. 일부 신흥국이 IMF에 대해 "경제 주권을 뺏는 일"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IMF 빈자리 메우는 中

IMF의 빈자리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앞세운 중국이 메우고 있다. 중국은 터키에도 대규모 자금 지원을 시사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8일 터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터키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도로 이번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신흥시장의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우쇼을루 외무장관은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심화하기를 원하며, 일대일로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100만%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도 IMF 대신 중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17일 대국민 연설에서 "IMF의 '발톱'과 불법 처방을 여기서(베네수엘라)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의 민간 경제연구기관 이코애널리티카의 알레한드로 그리산티 연구원은 "민주적 선거 시행 등을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할 수 있어, 정권 존속을 위해서는 IMF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근본적인 개혁 없이 중국 자본에 의존하다가는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해 중국 기업에 항구 운영권을 내준 스리랑카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 투자은행 버렌버그의 카르스텐 헤세 연구원은 "터키가 은행의 외환 거래를 제한하고, 카타르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암환자가 진통제를 맞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어들지 몰라도, 터키 경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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