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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기고]천오백년 잠에서 깬 '장수가야' 세계유산 등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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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류지봉 장수군 문화체육관광사업소장© News1


(장수=뉴스1) 김동규 기자 = ■류지봉 장수군 문화체육관광사업소장

최근 들어 1500년전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고대 가야인들의 삶과 흔적들이 확인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장수가야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의 진정성 있는 가치가 증명된다면 한국의 고대사가 바뀔 정도로 그 역사성은 매우 중요하다.

장수지역은 1993년도부터 가야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고대사에 있어서도 백제의 변방으로 인식되었고 가야가 확인된 이후에도 경북 고령에 자리했던 대가야의 영역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최초로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 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지만 지역민과 행정의 관심에서 소외됐다. 그러나 장수가야를 학계에 알린 고고학자와 그 제자들을 통해 맥을 이어왔고 이들의 진정성 있는 연구를 통해 그 역사성이 확인되고 있다.

반면에 영남지방인 경북고령과 경남김해, 함안은 가야고분의 학술연구와 유적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국가사적 지정과 관광자원화를 이뤘고 세계유산 등재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또 한국고대사를 삼국이 아닌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집중된 관심은 자연스레 언론의 관심에 노출되었고 이는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장수군은 장수가야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열악한 재정 속에 적은 예산이지만 학술연구를 실시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영남지방은 고분유적만을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해 왔다면 장수가야는 지표조사를 통해 고분, 제철, 봉수, 산성 유적 등 고대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 유적지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인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의 확인이다.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약 70여개소의 제철유적은 고원산악지대로 인식되었던 장수지역에 강력한 가야세력이 존재하였던 이유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대가야의 변방으로 취급됐던 장수가야는 멀리는 충남 금산에서부터 시작된 봉수의 집결지로 확인되면서 독자적인 세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대전과학관에 공식 기록된 봉수유적의 최초시기인 고려 공민왕때 보다 500년이나 앞선 봉수왕국이 장수가야다.

산성유적의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산성 내부에 자리한 집수정내부에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에 이르는 토기들이 확인되었고 이후 인위적으로 폐기된 현황이 확인됐다.

즉 고려시대 이후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고려가 가야에서 후백제까지 화려하게 수놓았던 흔적을 철저히 폐기했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후 장수지역의 가야와 후백제는 역사 속에서 찬란함을 뒤로한 채 긴 잠에 빠져들게 됐다.

이러한 장수가야 학술연구는 작년부터 탄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야의 역사가 재조명 되면서 각계각층의 활동과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이어지고 올해는 55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발굴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장수군은 가야 유적의 발굴과 복원, 정비 등 로드맵을 세밀하게 수립하고 세계유산 등재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kdg206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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