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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독립 위해 목숨 건 선열들… 기억해야 미래 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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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韓대사관 광복절 행사에 애국지사 후손 초청 / 김동진 선생 딸 김연령씨 등 참석 / “후손들 광복 후에도 비참한 삶 / 친일잔재, 지금이라도 청산해야”

“조국의 광복을 위해 많은 선열이 노력했고, 우리 후손들이 그런 노력을 영원히 기억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봅니다.”(독립운동가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씨)

중국 베이징의 주중 한국대사관은 15일 제73주년 광복절 경축 행사에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에서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초청했다.

세계일보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73회 광복절 경축식 행사에 참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진 선생의 조카 곽강, 종손 곽재호, 손자 김과, 딸 김연령씨, 김산 선생의 아들 고영광, 손부 악군요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63)씨와 종손 곽재호(15)군 등 가족, ‘아리랑의 노래’로 잘 알려진 김산(본명 장지락)의 아들 고영광(81)씨,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선생의 딸 정소제(75)씨 등 애국지사 후손들이 참석했다.

김연령씨는 “73년 전 오늘 광복을 맞은 것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에서도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광복 때까지 싸워 왔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곽재호군도 “나라를 잃었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임시정부를 꾸려 일본에 대항해 싸운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김동진 선생은 1940년 당시 중국군 기계화부대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한국광복군 창설 소식을 듣고 자원입대해 광복 때까지 총사령부와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고영광씨도 “최근 남북 정상이 두 번 만났고, 9월에 또 만난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뜻깊은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4)씨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은 앞다퉈 건국공로훈장을 받으며 독립유공자로 가면을 바꿔 썼지만, 독립운동에 온 몸을 던져 투신한 애국지사의 후손들은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며 여전히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국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씨는 단재 선생의 차남 신수범 선생과 결혼했다. 이씨는 시어머니가 남편이 14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단재 선생이라는 사실을 숨긴 일화를 거론하면서 “해방 이후에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끊임없는 감시와 탄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며 “지금이라도 친일파 청산과 반민족 행위자를 걸러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글·사진 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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