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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유레카] 서운관과 기상청 / 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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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학사를 다룬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으로 유명한 영국 과학사회학자 조지프 니덤은 조선의 서운관을 가리켜 ‘천문기록의 전당’(The Hall of Heavenly Records)이라 일컬으며 동명의 책(번역본 <조선의 서운관>)을 썼다. 왕립 천문대인 서운관은 고려 때부터 쓰인 이름으로 조선 건국 뒤에도 그대로 쓰이다 세조에 이르러 관상감으로 개명됐다. ‘조선의 르네상스’ 영·정조대 직후인 순조 18년에 일종의 관상감 백서인 <서운관지>가 편찬됐다. 서기로 1818년이니 올해가 200돌이다.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어도 “주요 절기에 운물(雲物)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서운’(書雲)이라는 말이 함께 쓰였다. 창덕궁 옆(현 현대사옥 터)에 관상감이 있어 그 앞 고개를 ‘운현’이라 하고 그곳의 궐은 ‘운현궁’, 동네는 운현동이 됐다.

<서운관지>는 중인 신분의 삼력관(천문·기상학자) 성주덕이 썼는데, 그는 책에 자신이 실수로 한때 관직에서 쫓겨난 사실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정조 시절 발간한 <칠정력>(달력)에 ‘우수’(雨水)가 누락됐다는 이유로 관련자들에게 감봉과 관직 박탈 등 중징계가 내려졌다. 공직자의 사소한 실수에도 엄정했던 당시 관직 사회의 엄격한 규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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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해안의 기습 폭우를 놓고 ‘유례없는 기상 패턴’이어서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해명에도 ‘빗나간 예보’라는 비판이 기상청에 쏟아졌다. 지금의 왕이 시민일진대 기상청은 ‘어쩔 수 없는 실수’에 대한 시민의 엄정한 비난을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성주덕 등은 징계받고 얼마 뒤 임금이 나서 신하들한테 ‘성주덕 등은 쓸만한 사람인데 조그만 잘못이 있었다 해도 복직시키려는 청원이 없느냐’고 하달해 6개월 만에 복직한다. ‘오보청’ ‘구라청’이라 혹독한 비난을 쏟더라도 기상청의 존재 이유마저 부인할 일은 아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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