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정치부 차장 |
인태연 신임 대통령자영업비서관이 8일 두 라디오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며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특히 인 비서관이 “지금 자영업자들은 위기인데, 여기서 최저임금이 2년에 걸쳐 30% 가까이 오른다. 이는 목까지 물이 차 있는 상황에서 입과 코를 막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유한 부분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학을 다닐 때 부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져 가업인 그릇 가게를 이어받은 뒤 30년 가까이 이불 장사, 옷 장사, 식당까지 다양한 경험을 한 인 비서관의 이야기인 까닭에 600만 명의 자영업자가 겪는 고통과 위기감이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
하지만 정치권 밖에서 인 비서관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드시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인 비서관은 10여 년 전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 때부터 소상공인들의 각종 집회, 기자회견 등에 빠지지 않았던 단골이다. 그는 대기업슈퍼마켓(SSM) 출점 반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 규제 등 이른바 ‘골목상권’ 지키기에 앞장섰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재계는 긴장하는 눈치다. 청와대가 인 비서관을 통해 내수시장에서 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기업 총수들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해놓고 정작 인사는 거꾸로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대기업이나 건물주 등 ‘갑(甲)’의 횡포를 막을 규제가 필요한 것은 현실이다. 청와대가 자영업비서관 자리를 신설하고 인 비서관을 발탁할 때는 분명히 그런 고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 비서관이 그동안 해온 일처럼 대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자영업 지옥’을 풀 수 없다.
인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기본적으로 장사가 안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임차료, 재료비 등 각종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장사만 잘되면 극복할 수 있지만, 장사가 안되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장사가 안되는 건 경기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과거보다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노후 준비는커녕 자녀 뒷바라지도 못 끝낸 채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은 저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차렸다. 아직 회사에 붙어있는 이들도 모여 앉으면 “나가면 뭘 해서 먹고사나”를 걱정한다. 경기도 안 좋은데 이런 식으로 경쟁자가 늘면 임차료나 세금을 줄여주고 각종 규제로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도 자영업자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없다.
자영업비서관을 일자리수석비서관실 산하에 두면서 청와대는 자영업자는 셀프 고용 노동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영업 문제는 고용 문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월급쟁이들의 정년을 늘려서 자영업 시장 진입자 수를 줄이면 가장 좋겠지만 이는 신규 채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 결국 자영업자 문제 해결은 인 비서관 차원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 재계와 노동계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양보하며 답을 찾아야 할 일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청와대는 물론이고 정치권 전체가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수면으로 떠오른 자영업자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는 모두 노동계 출신 전문가다. 폭염이 주춤하는 걸 보니, 정치의 계절 가을이 머지않았다. 자영업 문제 해법을 두고 정파를 넘어선 협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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