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사진)이 한국당 구원투수를 맡은 지 20일가량 지나면서 '김병준 비대위'의 명과 암이 조금씩 드러나는 모양새다. 지난달 17일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공식 취임한 김 위원장은 당내 최대 과제로 꼽힌 인적 청산에 주력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문재인정부에 날을 세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 취임 후 가장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부분 중 하나가 문재인정부에 대립각을 세운 일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여당의 정책을 국가주의로 규정하고 공세를 펼치면서 한국당은 시장주의와 자율을 강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김 위원장의 국가주의 공세에 더불어민주당 인사들 역시 맞불을 놓으면서 김 위원장 발언에 시선이 더욱 집중됐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예전에는 한국당 지도부가 무슨 말을 해도 여당이 신경을 안 썼는데 이처럼 대응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역시 지난 3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 위원장이 제시한 국가주의, 먹방(먹는 방송), 국민과 시장이 주도하는 성장, 자율성 등은 문재인정부와 대치점을 부각시켰다는 차원에서 보면 비교적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직설적 화법을 구사해 '막말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신중한 언행을 유지하는 점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 체류 중인 홍 전 대표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과 관련해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하자 "보수든 진보든 말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당의 이념 노선을 시장·자율주의로 규정한 것도 당 내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는 모양새다. 한국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과 관련해 후보 간 공약이 엇갈리는 등 '경제철학이 없는 보수 야당'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김병준 비대위가 순항을 이어가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이 한국당 최대 과제로 꼽힌 인적 청산과 관련해 명확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언젠가 인적 청산에 손을 대면 당내 반발이 다시 분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당내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당 사무총장·대표 비서실장 등 주요 자리에 '복당파' 출신 의원을 대거 등용한 것과 관련해 불만이 제기되는 모양새다. 한 한국당 의원은 "홍 전 대표가 '사당화 논란'으로 지적을 받았다면 김 위원장은 복당파 위주로 '줄 세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주의 공세 등으로 존재감을 키웠지만 여전히 상승하지 않는 당 지지율 역시 부담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진행한 전국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성인 1003명·95% 신뢰 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11%로 정의당(15%)에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병준 비대위가 지지율 반등에 실패하면 당내 반발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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