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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혁신성장 한다지만 부처마다 칸막이…정부를 혁신해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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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성장 긴급 좌담회◆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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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 국책연구원 수장들은 한국의 혁신성장 수준에 대해 투입은 많은데 산출은 적은 '비효율'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세계 1위지만 정작 혁신의 산출물 수준은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안으로 개방적 혁신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매일경제 본사에서 '혁신성장'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정부에 조언을 쏟아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정부가 요즘 혁신성장에 매진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정부가 혁신성장 8대 선도사업에 30조원을 투입한다는데, 돈을 풀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가 일어난다. 그러면 좀비기업이 양산될 수 있다. 조급해서 규제를 풀고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면 필연적으로 지대추구를 조장해 오히려 혁신을 방해한다. 정부는 조급증을 버리고 기본에 맞게 가야 한다. 혁신성장 혜택을 정권 임기 내에 보기 힘든 것이 정상이다. 8대 선도사업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전략적 집중을 하고, 1·2·3차 산업별 혁신과 산업 간 융·복합을 이루도록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한다. 이어 교육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당장 성과가 없어도 (정부의) 돈 따먹는 방식의 지대추구를 부추기기보다 교육이나 대학, 연구기관에 돈을 주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최정표 KDI 원장=우리나라는 어떤 형태의 선진국을 지향할 건지 모델도 없고 컨센서스도 없는 것 같다. 지향하는 선진국 형태에 따라 삶의 방식과 질이 다른데, 입장이 불분명하다. 이걸 설정하면 그 목적을 향해 각 분야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향하는 국가 목표와 모델이 먼저 만들어지면 혁신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것이다.

―혁신성장의 장애물로 부처 간 칸막이를 꼽는 사람도 많은데.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혁신성장은 그 특징상 여러 부처에 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기획재정부가 부처 간 회동을 주재하고 부처별로 과제를 맡기고 있지만 실제 기재부 역할은 취합하는 일에 그치기 때문에 사실 컨트롤타워라고 보기 어렵다. 부처마다 업무 영역이 있는데 그걸 관할권으로 인식하니까 다른 부처에서 자기 영역에 대해 얘기하면 침해로 인식해 싸움이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성과를 평가할 때 누구에게 귀속시키냐 하는 것이다. 성과공유 시스템이 잘 안 돼 있어 개선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협업 계정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한 뒤 평가하거나 중앙에 진짜 큰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성 이사장=조직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수직 계층제다. 수평적인 정보 소통이 어려운 조직이다. 그 대안이 '매트릭스' 조직이다. 축구도 개인기와 팀워크가 잘 조화돼야 하듯이 과제 중심으로 부처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회의는 같이하는데 부처가 서로 갈린다. 이래도 되나 걱정이 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혁신성장이 가능하다. 신기술·신산업에 관해서는 정부의 새로운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부처가 모든 걸 자기 영토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자기 영토 내 자기 고객만 보게 된다.

―이름은 다르지만 중국과 일본도 사실상 혁신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성 이사장=우리 정부의 혁신성장과 이웃 중국 일본을 비교해보면 우리 정부의 종합적인 기획과 구상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중국의 '제조 2025(산업 고도화 전략)'와 일본의 '소사이어티 5.0(초스마트사회)'을 보면 교육과 기술 등 각 분야를 학습하고 고민하고 미래를 예측해 설계하는 등 종합적인 구상을 한다. 우리가 일본과 중국 정부 기획 능력에 비해 앞서는 게 없다. 우리는 심오한 고민이 없다. 통합적인 체계가 필요한데, 우리는 각 부처가 각자 따로 하고 가끔 대통령 주재 회의를 하고 흩어지는 식이다. 부처가 각자 사업만 내놓고 자원 배분을 하려 하면 상시 조정 통합이 안 된다. 부처가 자기 고객만 챙기게 되니 지대추구로 흐르게 된다. 정부는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중국과 일본의 구상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고민해 체계를 잡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중국과 일본이 무엇을 하는지, 연구기관을 결합해 어느 수준까지 갔는지 더 공부해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 정부가 혁신성장을 잘 이끌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장 원장=정부는 처음부터 전방위 혁신을 내세웠다. 과학기술, 산업, 사람, 사회제도 등 4대 부문 혁신에 안 들어간 게 없었다. 그러나 8대 선도사업과 규제개혁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나머지가 다 묻히게 됐다. 혁신성장의 비전과 방향이 제시돼야 하는데 바빠서 그랬는지 성과창출 중심으로 혁신성장을 추진하다 보니 사람 혁신과 사회제도 혁신은 빠진 것처럼 보인다. 다른 부문 간 연계성도 결여돼 있다. 사람 혁신이라고 하면 창의적 인재 육성이 돼야 하고, 교육 과정과 노동시장 현장 수요 등이 반영돼야 하는데, 아직 발표된 게 없다.

▷성 이사장=혁신성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교육이다. 혁신의 출발은 새로운 생각(new thinking), 그다음이 다른 사고다. 그래야 기존과 다른 것이 나온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지, 아니면 남이 하는 같은 사고를 하게 하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우리 교육은 암기식으로 진행된다. 이래서는 혁신을 절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모방을 잘했을 뿐 혁신을 해온 게 아니다. 한국인 지능지수(IQ)가 항상 세계 1위인데 그간 창의적인 교육을 했으면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혁신성장을 할 잠재력이 있지만 이걸 망치는 게 바로 교육이다. 가능성 실현을 억제하는 게 교육이다. 우리가 다 바꿔야 한다. 혁신을 하려면 교육과 사람 마음을 바꾸는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저출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저출산을 잘 활용하면 교육을 바꿀 수 있다. 대학들이 전공과 교육에서 차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혁신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교육혁명에서 나올 수 있다.

―정부는 혁신성장의 일환으로 규제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최 원장='혁신은 규제개혁이다'라고 몰아가는 건 위험할 수 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고 지난 정부가 그토록 노력했지만 가시적 효과가 없었다. 규제가 그토록 어렵다. 이번 정부가 규제를 못 풀어 혁신도 못 했다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전체 비중의 1%도 안 되는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 성장의 전체인 것처럼 프레임이 만들어진 탓이다. 규제의 핵심은 안전, 환경, 거대자본 횡포 방지 등에 집중돼 있다. 기업의 비용을 올리는 요인들이라 기업들은 싫어할 수 있지만 삶의 질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만일 그런 규제가 다 풀어진다면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다. 규제는 규제 자체의 목적이 있고 혁신은 혁신대로 가야 한다.

▷장 원장=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제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활용하지 못 하게 막으면 규제도 혁신이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원격의료의 경우 그 기술을 구현한 사람은 사업화를 원하지만 제도가 가로막고 있다. 그런 규제가 왜 생겼는지, 그걸 풀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에 걸리기도 한다.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성 이사장=최 원장 말씀대로 규제를 쉽게 완화하게 되면, 예컨대 토지용도 규제를 풀면 엄청난 이익(지대)이 발생한다. 혁신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규제 완화로 지대가 발생하는 셈이다. 현 정부도 규제를 완화한다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 한다. 그러나 원격진료 같은 신기술에 대해서는 편익과 비용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문제를 관리할 능력이 준비되면 풀어야 한다. 규제 완화가 안 된다거나 규제를 몽땅 풀어야 한다는 등의 접근은 위험하다. 과학적 행정이 요구된다. 막을 건 막고 풀 건 푸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문제 없나.

▷장 원장=혁신성장 정책 전반을 보면 구현하려는 경제에 대한 비전이나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전체 전략이나 단·중·장기 로드맵 혹은 단계별 목표가 제시되지 않아 일반 국민도 8대 선도사업이나 규제개혁 같은 일면만 받아들이고 오해하기 쉽다. 주력 산업 고도화나 신산업 창출은 앞으로 지향하는 미래 산업 구조 그림이나 로드맵이 안 보인다.

▷최 원장=혁신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정부가 조속한 성과를 보기 위해 추진하는 8대 선도사업은 첨단사업이라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렵다. 서비스산업도 혁신의 영역이고 일자리와 연결되는 분야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보육, 육아, 문화, 예술 산업 등에 집중 투자하면 일자리 창출과 혁신 둘 다 이룰 수 있다.

―혁신성장에서 대기업 역할은.

▷장 원장=혁신 투자자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 경쟁이 이뤄지는 시대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한국 현대차 생태계와 미국 GM 생태계 간 경쟁이다. 이 생태계 내 핵심 주체가 대기업이다. 수직 계열화된 산업 구조에서 대기업이 기술을 선도하고 협력업체들에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벤처에 투자해 혁신성장 생태계를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울러 대기업 지원에 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을 위해 인프라스트럭처를 깔아주고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차원의 지원은 좋다.

▷성 이사장=혁신 군단을 만들어야 한다. 구글도 이미 개방형 협력 체제다. 대기업 스스로 이익을 위해서는 공동으로 기술을 통합·개발해 시장 제품화로 연결해내야 한다. 혁신 군단 보유 여부가 글로벌 시장 성패를 가른다. LG 연구단지가 들어선 마곡사이언스파크에 정말 다양한 관련 기업이 터를 잡았으면 좋겠다. 미국 실리콘밸리, 프랑스 소피아 앙티폴리스, 영국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처럼 만들어져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살아 숨쉬며 혁신을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사회 = 정혁훈 매일경제 경제부장 / 정리 = 윤원섭 기자 / 김인오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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