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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기 때문에, 양쪽 세력의 역관계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밖에 없다.” 한반도 문제를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강대국 결정론을 요약하는 말이다. 최근 출간된 대담집 <평화의 규칙>에서 문정인(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은 강대국 결정론의 출처로 한스 요아힘 모겐소의 <국가 간의 정치>를 든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가인 모겐소는 ‘한반도는 2000년 동안 강대국 정치에 운명이 결정돼온 가장 고전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모겐소가 이 책을 쓴 것은 1948년이다. 모겐소의 주장은 국가 역량이 미약하고 국민이 각성되지 않았던 해방 전후 시기에는 타당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문정인은 말한다.
그러나 강대국 결정론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가 강대국 결정론의 대표자다. 키신저는 북한 핵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국과 중국의 ‘빅딜론’을 꺼내든 바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으니, 미국은 중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약속해주고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책임지고 비핵화를 얻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정인은 키신저의 발상이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탁상공론”이라고 말한다. 첫째, 키신저는 중국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둘째, 한국을 완전히 허수아비로 여기고 있다. 한국은 경제력 규모 세계 11위이고 군사력에서도 세계 7위에 이르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강대국 정치에 무력하게 휘둘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철 지난 주장이 아직도 활보하는 것은 강대국의 관점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정치·경제·학문·언론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이 한반도 운명을 좌우한다는 담론은 우리를 강대국에 예속시키는 자기비하적인 주장일 뿐이다. 한반도에 지정학적 숙명이란 건 없다. 강대국 결정론이 아니라 한반도 결정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할 때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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