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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매경데스크] 구글의 한국 경제 점령, 시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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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침 5시 45분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예전에는 따르릉 차임벨 소리에 깼는데 올봄 변화가 생겼다. 삼성 인공지능(AI) 빅스비가 저절로 구글과 연동돼 알람이 음성 뉴스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업데이트 동의 버튼을 무심코 눌렀다가 벌어진 변화다. '현재 시각' '오늘 날씨'에 이어 '구글이 들려주는 아침 뉴스'가 차례로 음성 서비스되면서 아침잠을 깨운다. 얼마 전부턴 출근길 스마트폰 화면에 '구글의 요일별 아침뉴스' 팝업창이 등장했다. 어떻게 해야 팝업창이 안 뜨게 할지 또 궁리를 해봐야겠지만, 클릭을 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잠시 빈틈이 생기면 파고드는, 이른바 전지전능한 구글 에브리웨어(google everywhere)의 파괴력이 실감 난다.

구글이 국내에서 파상 공세에 들어갔다. 네이버와 국내 언론사들이 아웃링크·인링크 공방을 벌이는 사이 네모난 검색창만 보여줬던 구글 앱이 검색창 아래로 뉴스 진열을 시작했다. 분열을 틈타 모바일 뉴스 시장도 먹어 치우겠다는 심산이다. 자동차를 몰 때도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가 현대·기아차 내비게이션 안으로 밀고 들어와 AI 길안내와 검색 서비스를 한다. 한국말과 영어가 자유자재인 AI 스피커도 곧 나온다.

PC에서 모바일로, 모바일에서 AI로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승자 독식의 철칙이 지배하는 정글을 구글이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 폰·LG 폰을 써봤자, 현대·기아차를 타봤자 껍데기 브랜드만 국산이고 알맹이는 구글로 채워진 '속 빈 강정' 시대가 도래할 판이다.

외국 기업 침공에 맞서 국내 산업을 보호하자는 구닥다리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소비자 편리를 위한 경쟁이라면 그것이 해외 서비스이건, 국내 서비스이건 막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지는 불공정한 경쟁이라는 의심이다.

구글은 지난달 유럽연합(EU) 경쟁당국에서 사상 최고액인 43억4000만유로(약 5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스마트폰 업체들이 운영체제인 구글 안드로이드를 탑재할 때 구글의 다른 앱들도 선탑재하도록 강요해 모바일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죄목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이 차지한 20%를 뺀 나머지 80%를 독점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에 10여 개에 달하는 구글 앱을 기본으로 깔고, 구글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강제하고, 구글 검색엔진과 플레이 스토어가 홈 스크린에 가깝게 위치하도록 '노예 조항'을 단서로 달았다. 이 같은 강제 조항들은 구글이 경쟁자들을 손쉽게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다. 대다수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을 사면 기본으로 깔린 '구글 플레이' 이외에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다른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네이버는 2012년 앱스토어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2016년 말 철수했다. 구글이 네이버 앱스토어와 같은 앱은 구글 플레이에 등록되는 것조차 막았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2016년 신작 게임 '원 포 카카오'를 카카오 플랫폼을 통해 먼저 선보였다가 낭패를 겪었다. 구글 플레이에서 일정 기간 검색이 안 됐고, 검색 상위에 노출되도록 돈까지 냈지만 이에 대한 승인마저 취소됐다. 구글은 또 원스토어와 같은 로컬 앱마켓에서 앱을 다운로드하면 '알 수 없는 출처'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이는 원스토어를 보안에 취약한 '악성코드'로 착각하게 하는 교묘한 장치다. 구글 앱마켓에서 장사하면 매출의 30%를 '자릿세' 명목으로 일괄적으로 떼 간다. 올해 한국 앱마켓 시장에서 구글 점유율은 60%가 넘고 금액으로는 5조7445억원에 달할 예정이다. 더 기막힌 일은 미국 본사에서 앱마켓을 관리한다며 한국에 매출 신고도 안 하고, 해당 법인세도 안 낸다는 사실이다.

EU는 벌금과 시정 조치를 내렸지만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꿈쩍도 안 한다.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 PC 천하에 맞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에 과감한 시정 명령을 내렸던 공정위는 모바일 제국 구글과 애플의 횡포에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앱마켓 갑질 신고센터라도 개설해야 한다.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방송통신위원회도 적극 모니터링에 나서야 한다. 조세 주권도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산업 육성 정책보다 이게 먼저다. 소를 다 잃고 외양간 고쳐 봤자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근우 모바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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