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권고안 현실화되면 금산분리·일감몰아주기 등 비켜갈만한 규제 없는 상황
"불황에 경영환경까지 악화.. 기업을 적폐로 몰아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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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외부인사로 구성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특별위원회가 제출한 권고안을 바탕으로 이달 안에 정부안을 마련, 입법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계는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는 근절해야 할 대상이긴 하지만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떨어지는 등 기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본지는 주요 그룹별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편안이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총 4회에 걸쳐 살펴봤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반(反)삼성법 종합세트'라는 말이 나온다. 전면 개편되는 권고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삼성을 그냥 비켜가는 내용이 거의 없다. 사실상 권고안은 삼성을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수뇌부는 정부의 요구안에 화답하기 위해 이리저리 묘책을 찾고 있지만 당장 모든 걸 바꾸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란 진단만 받고 있다. 연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은 삼성에 '주력 계열사 몇 개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계에서는 "한국에서 점점 기업하기 힘들어진다"는 원성이 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편=삼성몰이법
5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래 38년 만에 공정거래법을 전면적으로 개편, 이달 개편안을 확정한다. 공정위는 전면 개편안이 확정되면 입법예고한 뒤 규제 심사 등을 거쳐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특별위원회의 주요논의 결과(공정위 권고안)를 요약하면 △지주회사, 순환출자 제도 개편 △금융보험사, 공익법인 출자규제 강화 △해외 계열사 공시 강화 △사익편취, 부당지원행위 등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으로 정리된다. 이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국내 대부분의 대기업은 지배구조, 내부거래, 계열사 지분율 조정 등 대규모 수술이 불가피하다. 특히 재계의 '맏형' 삼성은 피할 수 있는 안건이 없다. 하나의 문제를 풀기도 빠듯한 시간에 복잡한 방정식 여러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개정법이 적용되면 이 회장은 사익편취 규제 적용대상(총수일가 지분 20% 이상 보유),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걸린다. 지금은 30% 이상 지분을 갖는 경우만 규제하고 있다.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은 대기업집단 금융회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금산법은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이른바 금산분리가 목적이다.
삼성은 참여정부 시절 법 개정 때 과거 취득한 5% 초과 지분과 최대 15%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예외조항'으로 인정받았다. 삼성 금융계열사(생명 8.27%, 화재 1.45%)가 삼성전자 지분 9.72%를 보유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번 권고안이 현실화할 경우 지분 4.72%(9.72%-5%)의 영향력은 사라진다.
국회에 계류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이 개정안은 금산분리를 위해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약 18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 액면분할 이후 최저가를 면치 못하는 삼성전자 주가가 오버행(대량 대기매물) 이슈에 휩싸이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시장에서 20%(300조원) 안팎을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오버행 이슈는 그 자체만으로 증시를 뒤흔드는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총수일가 지분 20% 개정안에서는 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웰스토리 등이 새로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기업, "제발 답 좀…" 하소연
지분율 조정과 관련, 정부는 '묻지마 연내 해결'을 외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말이면 삼성의 순환출자구조 모두가 해소될 것이다. 삼성의 변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변화는 후퇴하지 않을 변화"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꼬인 매듭을 단박에 풀기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금산법과 관련해 가장 간단하고 편한 방법은 삼성이 금융계열사 주식을 다 팔고, 포기하는 길"이라며 "과연 이게 옳은가. 더 큰 문제만 만들 뿐"이라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2년 전 경제개혁연대 시절 쓴 자신의 보고서를 토대로 지주회사 전환을 해답으로 권하고 있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도 삼성이 이미 검토하고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백지화한 지 오래다. 얼마 전 김 위원장은 현대자동차의 지주회사 전환에 힘을 실어줬지만 주주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정부가 성과주의에 매몰돼 기업의 팔만 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정을 충분히 듣고 동반자 입장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원로 기업인은 "기존 법의 테두리에서 기업을 성장시켰지만, 법은 점점 기업을 옥죄면서 결국 기업하기 힘든 환경에 놓였다"며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무조건적.일방적 통보만 할 경우 기업의 해외이전 등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기업인들은 저울을 재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와 삼성은 서로의 목표를 위해 아슬아슬한 '썸'(미묘한 관계)을 타고 있다"며 "두 주체는 상생해야 하는 관계인데 대기업을 적폐로 만들고 몰아붙이기만 해선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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