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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김민의 탕탕평평] (109) 기억과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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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동시통역사·정치평론가·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김민의 탕탕평평] (109) 기억과 망각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에서는 기억해야 할 것들과 잊어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대부분 많은 것들을 잊어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을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어로 'Time will tell'이라는 표현이 있다. 의역하면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다. 그렇다. 그렇게 모든 것은 일정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세상 어떤 일도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무감각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괴롭던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필자도 삶에서 많은 것들을 잊어간다. 내 삶에서 다시는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 서너 가지는 있는 것 같다. 그 괴로움에 삶을 맞바꾸고 싶었을 만큼의 고통스럽던 기억들이 있다. 이제는 그 먹먹함이 아련하고 구태여 기억을 되새겨야만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도 이제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느끼게 된다. '내가 참 잘 견뎌왔구나. 그때는 그랬었구나' 그 정도로 정리된다. 혹여나 우리의 삶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아름다운 추억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추억은 기억할수록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만, 아픈 기억은 마음을 비우고 시간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유익하다.

생물에서 항상성(恒常性)이라는 것이 있다. 생물체 또는 생물 시스템이 외적 및 내적인 여러 가지 변화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형태적 상태, 생리적 상태를 안정된 범위로 유지하여 개체로서의 생존을 유지하는 성질을 말 하는 것인데 우리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기억은 고통스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생각과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려고 작용하는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큰 축복이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역사가 그러하고 우리 국민들의 공통의 아픔이 그런 망각과 항상성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을 공유하는 무리와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것은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악기능의 시너지 효과만 있을 뿐이다. 지나간 시간은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 다만 이성과 냉철함으로 지난 과거에서 기본적인 교훈만 삼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고통과 아픔을 반복하지만 않도록 노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거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용서를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어지간하면 용서하는 것이 좋다. 한(恨)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가 얼마나 지옥인가. 상처로 인한 미움과 증오와 고통과 분노야말로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그것은 그냥 놔두어도 아물 상처를 스스로 만지고 긁어대며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도 같다. 폭설이 내린다고 걱정하고 안절부절할 필요도 없다. 치울 수 있는 만큼만 치우던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자. 언젠가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녹아버려 흔적조차 사라진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일들도 그러하다.

영남에서 호남기반 정당이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호남에서 또한 정통 호남기반인 정당이 지난 선거에서 군소정당으로 머무르지 않았는가.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을 향해 그들의 선조를 가지고 '친일파' 운운하는 것을 이제는 좀 멈추었으면 한다. 보수정당도 진보정당을 향해 '종북좌파' 운운하는 것을 이제는 멈추었으면 한다. 서로 과거의 과오를 가지고 현재까지도 진행형이 아니라면 그런 이념 다툼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미 대한민국은 정치인도 국민들도 극단적인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다. 대부분은 합리적 중도에 가깝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필자 스스로와 지인들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좋은 것은 추억으로 기억하자.

다만 아픈 것은 서로 더 이상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어느 편에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몰라서 반복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은 바보 아니겠나. 삶은 복잡난해 하면서도 의외로 단순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단순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인생이다. 그것을 확대하면 우리 모두의 삶인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범종 기자 joker@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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