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가 비용 대는 CFD 방식
35년간 전력 팔아 건설비 회수해야
돈받고 건설 UAE ‘EPC’와 달라
한·영 정부, 원전 운영방식 협의 지연
무어사이드 사업자 뉴젠 지분 가진
프랑스계 기업은 작년 사업 철수
경영난 도시바도 발빼려 승부수
“한전, 잘못 뛰어들면 경영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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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추진중인 신규 원자력발전소 사업이 국내에서 또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 ‘뉴젠’(NuGen)을 매각하려는 일본 도시바가 한국전력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했다는 소식이 지난달 31일 전해지면서다. 도시바의 이번 결정은 경영난 해소 목적으로 누젠 지분을 서둘러 매각하려는 상황에서 한국 쪽의 의사결정을 재촉하기 위한 ‘승부수’란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국내 원자력 업계와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한전이 애써 잡은 국외 원전사업 기회를 놓친 것으로 몰아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에 묻혀 국외 원전 사업의 수익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따져볼 기회가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이 추진중이 6개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 진출한 일본·프랑스의 원전 기업들은 이미 철수를 결정했거나 수익 보장 방식 및 수준을 두고 수년째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의 신규 원전 사업 추진과 관련해 그동안 보여진 여러 장면들을 종합하면, 원전은 더이상 ‘돈 되는 사업’이 아닌 ‘돈을 잃기 쉬운 사업’으로 전락했다고 보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국내에서는 이게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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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조원짜리 사업?…“22조는 지불해야 하는 돈”
영국 정부가 신규 원전을 대거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때는 2010년 10월이다. 당시 영국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노후 원전을 대체할 신규 원전 8기를 건설하기로 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 뒤 영국에서도 신규 원전 백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영국 정부는 강행했다. 원전 안전 문제가 떠오르며 각국에서 ‘패잔병’ 취급을 받게 된 원전업계의 시선이 영국으로 쏠린 배경이다.
영국 ‘건설 공적자금 없다’ 원칙에
사업자가 비용 대는 ‘CFD’ 방식
35년간 전력 팔아 건설비 회수해야
돈받고 건설 UAE ‘EPC’와 달라
한·영 정부, 원전 운영방식 협의 지연
하지만 영국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균형 재정’을 강조하며 ‘원전 건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영국 원전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 ‘발전차액정산 제도’(CFD)란 사업 방식을 요구했다. 건설비를 스스로 조달해 원전을 짓고, 35년 간 전력을 팔아 건설비를 회수해가라는 것이다. 돈을 받고 원전을 지어주는 방식(EPC)이었던 아랍에미리트 원전 사업과는 성격이 아주 달랐다. 무어사이드 원전을 두고 ‘22조원짜리 사업’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22조원은 받는 돈이 아니라 투입해야 하는 돈인 것이다.
도시바, 원전 짓던 자회사 부도로 손 떼
국내 원전 업계의 주장대로 영국 원전사업이 좋은 기회라면 도시바는 왜 손을 떼려고 할까. 앞서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 뉴젠이 영국에 약 1GW 규모의 원전 3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2014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뉴젠의 지분 구조는 일본 도시바 60%, 프랑스 에너지기업 엔지 40%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난해 4월 엔지는 뉴젠 지분 40%를 1억3800만달러에 도시바에 넘기고 철수했다.
엔지 철수는 도시바 자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파산 신청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 굴지의 웨스팅하우스는 후쿠시마 사고 뒤 세계적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비용이 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미국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원전 건설 사업에서 7조원(7천억엔)에 이르는 손실이 생겼다. 결국 웨스팅하우스는 파산했고, 모회사인 도시바의 경영난도 가중될 게 뻔했다. 무어사이드 사업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엔지가 신속하게 발을 뺀 것이다.
무어사이드 사업자 ‘뉴젠’ 지분 가진
프랑스계 기업은 작년 사업 철수
경영난 도시바도 발빼려 ‘승부수’
“한전, 잘못 뛰어들면 경영난” 지적
뉴젠 지분을 모두 떠안게 된 도시바와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을 살려야 하는 영국 정부가 ‘에스오에스(SOS)’를 친 곳이 한국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해 3월27일 “웨스팅하우스가 파산을 신청하면 도시바가 한국전력에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도시바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뉴젠 매각 의사를 밝혔다. 또한 그해 4월5일에는 영국의 그레그 클라크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이 방한해 기자간담회를 하며 “영국은 한전의 성공적인 아랍에미리트 사업 수행을 관심있게 봤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부도 매물’ 뉴젠, 덥썩 인수해도 괜찮을까
지난해 12월 도시바가 한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자, <가디언>을 비롯한 영국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레스큐’(rescue·구출하다), ‘세이브’(save·t살리다) 등의 표현을 썼다. 세계 원전 사업의 쇠락과 맞물려 위기로 몰린 무어사이드 원전을 한국이 구했다고 전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한전도 발전차액보상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생각이 없었다. 지난 8개월 간 영국 쪽에 수익성 보장을 요구한 결과, 최근 영국 정부는 사업비 부담을 담보나 대출 형태로 일부 분담하고, 대신 전력판매 수익도 나누는 ‘규제자산기반(RAB)’ 모델을 새롭게 제안했다. 양쪽은 해당 방식의 수익성과 안정성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영국이 고집해 온 발전차액보상제도는, 힝클리포인트 사업에 나선 프랑스 국영전력회사 이디에프(EDF)와 와일파·올드버리 원전사업 협상을 하고 있는 일본 히타치로부터도 강한 반발을 사 왔다. 이디에프는 힝클리포인트 원전 전력의 판매단가를 35년간 ㎿h당 92.50파운드씩 보장받기로 영국 정부와 2013년 합의했는데, 그 사이 건설비용이 최초 추정 150억파운드(21.7조원)에서 196억파운드(28.4조원)으로 불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와일파·올드버리 원전 사업자 ‘호라이즌뉴클리어’를 2012년 인수한 일본 히타치도 영국 정부와 수년째 줄다리기 중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5월17일 영국 정부가 태도를 바꿔 총 사업비 3조엔(28.4조원) 중 2조엔을 대출 형태로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업계는 이번에도 양쪽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면 히타치도 영국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한다.
사업 조건도 문제지만, 영국 내 신규 원전 비판 여론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영국 하원 회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힝클리포인트 사업에 대해 “정부가 전력 이용자의 이익을 간과해 비싼 비용(전력구매단가)을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디에프에 보장해준 ‘㎿h당 92.50 파운드’가 너무 비싸 국민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 자문기구인 국가인프라위원회(NIC)는 지난달 10일 세계 원전 경제성 하락을 강조하며 “일부 신규 사업들의 속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판 여론이 높아져 영국의 정책 방향이 바뀌거나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한전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자칫하면 한국도 원전 사업의 위험성, 수익성 문제로 고전하고 있는 프랑스, 일본 같은 신세가 될 것 같아 우려된다”며 “탈원전의 돌파구로 수출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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