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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확장된 미디어, 진보와 보수의 대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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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사에서 미디어 지형은 오랫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까웠다. 남한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자유당 정권 이래 독재정권에 가까웠던 보수언론이 주도권을 쥐는 동안 반대편에 선 민주·진보계열의 목소리는 위축된 역사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탓이다. 때문에 보수와 진보가 미디어라는 장에서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게 된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신문과 방송 등에서는 보수적인 색채를 띤 매체들의 영향력이 강했던 탓에 진보성향의 매체는 상대적으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팟캐스트 등 이른바 뉴미디어 공간을 앞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서비스가 대중과 가장 밀접한 미디어로 성큼 다가선 현재, 본격적인 미디어 공간에서의 보·혁 대결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진보·보수진영 사이의 한판 승부가 눈길을 끌기 시작한 출발점은 대체로 2002년 16대 대선국면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당시 이회창 후보와의 대결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 “인터넷 지식정보화 시대가 만들어준 21세기 최초의 디지털 대통령”이라 칭하며 “인터넷은 흑색비방보다는 건전한 쌍방향 정책토론을 이끌어내고 돈 안 드는 경제선거를 이끈 미디어 선거의 주역”이라 평가할 정도였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파급력을 노 전 대통령이 실감한 것도 당내 경선을 통과하며 불기 시작한 ‘노풍’이 한풀 꺾여가던 대선과정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지지여론에 다시 불을 지피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인터넷 사용층 가운데 중심적인 위치에 있던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를 비롯해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대자보>, <서프라이즈> 등 기성 언론에 대한 ‘대안언론’을 표방한 인터넷 기반 미디어들이 관심을 모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현실정치에까지 인터넷 주사용층의 여론이 적지 않은 힘을 미치는 것을 확인한 보수진영에서도 진보성향 미디어에 맞서는 인터넷 언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수성향의 <독립신문>과 <민족신문>, <업코리아> 등이 참여정부가 들어선 전후로 활동을 시작하며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사용층을 끌어들인 것이 인터넷 미디어 분야에서 첫 번째 보수와 진보 간 대결인 셈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각 진영의 인터넷 미디어들이 난립하며 대결구도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 영역에서만큼은 한동안 진보진영의 우위가 계속됐다. 진보성향 인터넷 여론의 분화도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이뤄졌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1999년 창간돼 당시로서는 인터넷 언론의 선발주자였던 <대자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지지자들이 <서프라이즈>라는 웹진 형식의 사이트로 이동하고, 이어 민주당 내 신당 추진 등의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친노와 비노, 반노 성향의 지지층이 각각의 사이트를 열며 노선 분화가 이뤄졌다. 또 당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중심이 된 세력은 ‘진보누리’라는 사이트로 이동하는 등 민주·진보 성향 지지층 내부의 분화와 대결이 전체 인터넷 여론지형을 좌우하던 시기였다.

한동안 진보진영이 우위를 점하던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서 보수의 반격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2007년 17대 대선을 전후한 때부터다. 인터넷 여론이 극명하게 갈라져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의 단초는 이미 2005년 11월 황우석 논문 조작사태 당시 드러난 바 있다. 인터넷을 포함한 매스미디어 전반에서 논문 조작 여부를 둘러싸고 지지와 비판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과정에서 보수·진보 간 정치성향의 차이도 드러나긴 했지만, 이 사태에서는 결국 조작 사실이 밝혀지며 좌우 대결구도는 벗어난 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과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국면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전보다 더 커진 인터넷 여론지대를 배경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2003년을 전후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 사회에 ‘1인 미디어’ 개념을 알린 ‘블로그’를 비롯해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온라인에서의 여론을 주도할 정도로 널리 확산된 상황도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 또 촛불집회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게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등 영상 서비스까지 활용되면서 기성 미디어 통로를 벗어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적 표현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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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시위는 정책 실패의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며 발생 이후 갈등 관리의 부재와 그로 인한 제반 이념·이슈의 폭발을 야기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온라인 미디어와 이념갈등의 위기’ 논문에서 온라인 영역의 주된 갈등사례로 2008년 촛불집회를 분석한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기성 보수언론에 의존하는 모양새를 띤 반면 시민들의 여론과는 극명하게 배치되면서 사태가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온라인 공간 자체는 개방적이지만 핵심 집결지를 중심으로 ‘좁은 세계 네트워크’가 배타적인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와 동류집단을 분류할 수 있는 기술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보수언론이 사설로 촛불집회에 비판적인 여론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지만, 반대로 인터넷 미디어 분야에서는 소수 파워블로거를 중심으로 이어진 네트워크가 넓고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른 미디어 분야의 여론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여론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까지 덮치며 블로거들의 네트워크를 비롯해 당시 가장 대표적인 토론공간이던 ‘다음 아고라’ 등에서의 반이명박 정부 여론은 지속적으로 유지됐다. 이와 상반된 보수진영의 인터넷 여론 역시 ‘자유넷’과 ‘뉴라이트닷컴’, ‘프리존’, ‘지만원의 시스템 클럽’ 등이 결속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민주·진보진영의 여론에는 배타적인 공간을 구축했다. 장 교수는 온라인 미디어 참여가 대중화된 이 시기에 와서 정치적 성향의 양극화도 함께 나타났다며 미디어를 통한 여론이 온라인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특히 선거와 사회운동 등 ‘크리티컬 이벤트’ 국면에서 이념 양극화가 더욱 극명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앞선 10년 동안의 민주당계 정권 기간을 거친 민주·진보진영에서는 당시 미디어 대결에서 보수 쪽으로 다시 주도권을 넘겨주고 자신들은 탄압의 대상으로 위치가 바뀌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종합편성채널이 기성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배분되면서 보수정권에 비판적인 미디어 채널을 새롭게 확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도 이 시기다. 마침 확산되고 있던 스마트 기기를 통해 쉽게 여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SNS서비스와 팟캐스트로 미디어 대결장이 더욱 넓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이 진행하는 ‘반이명박’ 성향의 ‘나는 꼼수다’나 고 노회찬 의원 등이 진행한 ‘노유진의 정치카페’와 같은 정치 팟캐스트들이 팟캐스트 도입 초기부터 줄곧 구독 상위권을 유지해온 것이다. 반면 이 영역에서도 보수진영의 정치 팟캐스트는 후발주자였던 탓에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선점하는 데는 실패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부터 블로그와 SNS, 팟캐스트 등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 통로가 넓어지면서 진보 쪽이 이를 더 잘 활용한 측면은 부정하기 어렵다. 굳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문과 방송, 잡지 등 기성 미디어는 보수가 주도하던 권위주의 시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권 등에서 등사기로 찍어낸 유인물을 배포한 것을 1인 미디어의 원형으로 볼 수도 있어 역사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해방 직후만 보더라도 좌우를 망라한 다양한 이념의 신문과 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이 대안적 미디어에 집중한 것은 특수한 상황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미디어 출현과 수용>을 쓴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946년 10월 전국에서 발행되던 정기간행물이 68종, 101만부에 달했고, 이 해까지는 진보적 성향과 좌익계열의 신문들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언론계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 군정이 이후 좌익 언론을 통제하는 반면 우익 언론을 지원하면서 미디어계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오랫동안 이어진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성 미디어 외에도 인터넷과 SNS 등 미디어 영역이 크게 확장된 현재에 와서는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구분되는 정파적인 대결도 더욱 전면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여론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견과 정파성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맞선다. 장우영 교수는 “이념갈등의 고조기에 온라인 공간이 개입되면서 이념갈등이 더욱 크게 증폭되었고, 우리 사회는 사회 의제를 이념갈등으로 치환하는 악순환을 겪어 왔다”며 “고질적인 갈등형 정치문화와 과도한 권력욕구에서 비롯된 문제는 게시판 중심의 온라인 참여문화로 이념갈등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환경은 어느 정도 조성되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주장도 공론장 안에서 이미 걸러질 수 있는 상황이며, 정권 차원의 언론 통제와 같은 외부변수만 막아낼 수 있다면 정파성 자체가 가진 순기능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김영욱 카이스트 교수는 “권력의 언론 통제가 느슨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보수와 진보 언론이 표면적으로 이념지향을 나타내고 있으나 지난 30년간 이들의 정파성은 점점 ‘좋은 정파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오고 있다”면서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정치권의 진영논리와는 달리 미디어의 정파성은 독자의 선택권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론의 품격을 높이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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