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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디지털스토리] "화재 위험 있다는 내 차, 리콜 받으러 석 달 후에 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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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리콜…올해 사상 처음 연간 200만대 넘어서

결함 나타나고 3년 지나서야 '늑장' 리콜

"강력한 규제 필요…벌금 올리고 벌칙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BMW 520d 주인 이재명(39·충남 예산군) 씨는 최근에 차량용 소화기를 구매했다. 동일 차량에서 잇달아 발생하는 화재 사고 때문이다.

이 씨는 "운행 중에 타는 냄새가 조금만 나도 얼른 차를 세운다"며 "아내가 차를 가져 나가면 종일 걱정이 될 정도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센터에 수십 통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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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콜, 2001년 600여대 → 2018년 207만여대

달리는 자동차에서 불이 났다. BMW 차종에서 이런 사고가 난 것은 2015년 11월부터였다. 관련 사고에 대한 리콜 조치가 발표된 것은 올해 7월 26일이었다. 사고 발생 후 리콜 확정까지 3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그 사이 수십 대의 차량에서 불이 났다. 늑장 대응이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는 건 국토부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지난달 26일 리콜 결정 이후에도 해당 차량의 화재가 잇따르자, 이달 3일 뒤늦게 해당 차량 소유자들의 운행자제를 권고했다.

자동차 리콜은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는 7개월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수입차의 경우 증가 속도는 더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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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리콜은 안전 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을 때 자동차 제작·조립·수입업체가 차량 소유자에게 결함을 통보하고 수리·교환·환불 등 시정 조치를 하는 제도다.

자동차 리콜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 리콜 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리콜 대수는 207만여대(배출가스 관련 제외)를 기록했다. 집계를 시작한 1992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200만대를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종전까지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의 197만5천대를 7개월 만에 넘어선 것이다.

수입차의 경우 2001년 600여대에 불과했으나 3년 뒤인 2004년 1만대를 넘어섰다. 이후 2014년 13만6천여대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0만대를 돌파했다.

◇ "전화 50차례 해도 통화안돼 차끌고 갔더니 예약하고 다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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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떡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최근까지도 이상이 아니라고 수리 못 해주겠다고 했거든요. 리콜 발표한 지금도 대책이 없어요."

A 씨는 최근 자신의 BMW 520d 차량이 리콜 대상에 포함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리콜 발표 이후에도 불만은 커졌다. 그는 "해당 콜센터에 50통 넘게 전화를 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고 안 받는다"며 "서비스센터에 차를 끌고 무작정 찾아가도 대기 인원이 많다며 예약을 다시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동차 리콜 건수는 증가하는 데 비해 업체의 대응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이번 BMW 차량 사건의 경우, 비슷한 증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15년이었고 리콜 발표는 지난달 26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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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 리콜'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2015년 10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배출가스 부품 결함 등으로 적발된 지 2년이 지나서야 해당 차량 2천200여대를 리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에 환경부가 실시한 종합점검에서 결함이 적발됐지만 업체는 2년이 넘도록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에는 현대·기아자동차가 '늑장 리콜 의혹'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를 고발한 YMCA자동차안전센터 측은 "세타2엔진에 대한 결함 가능성을 2010년부터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8년 동안 아무런 대책 없이 결함 사실을 부인했다"며 "국토교통부 조사 발표가 임박하자 갑자기 리콜 계획을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늑장 리콜 지적에 대해 "2016년 10월부터 국토부 조사에 성실히 협조했다"며 "해당 문제 가능성을 발견했고 리콜 사안이라 판단해 자진 신고했다"고 해명했다.

리콜이 발표됐다 하더라도 바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리콜 통보 문자를 받은 BMW 차주 B 씨는 "차량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예약을 잡는다고 하니까 10월 말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하더라"며 "그럼 그동안 차를 운행하지 말라는 얘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BMW코리아 관계자는 "콜센터 직원을 두 배로 늘려 24시간 가동 중이며 20일부터 본격적으로 리콜을 시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화 연결이 안 되거나 응대가 늦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중이란 것만 알아 달라"며 "렌터카 지원 등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

◇ 업체, 리콜에 소극적…처벌 미약하고 유인책도 없어

전문가들은 늑장 대응이 잦은 이유는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 교수는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차량 결함이 나타나도 리콜을 미루는 것은 이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늑장 대응에 대한 뚜렷한 징벌 제도가 없어서 업체가 서둘러 리콜을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체가 리콜 발표를 미루면 회사 이미지 손상을 줄일 수 있고 소비자는 자기 비용으로 차를 수리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리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BMW 화재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차량 운행 중지나 수천억원의 과징금 제재가 이뤄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2014년 5월 미국교통당국은 제너럴모터스(GM)가 점화장치 등의 결함을 미리 알고도 리콜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벌금으로 상한인 3천500만 달러(약 394억원)를 부과했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도요타와 포드 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 이후인 2010년 벌금 상한을 기존 1천740만 달러(약 196억원)의 두 배로 올렸다

박병일 카123텍 대표는 "국토부의 미진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며 "같은 문제가 잇달아 발생하면 해당 차량을 회수해 조사하는 게 정답인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해당 업체가 늑장을 부리는 것은 결국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며 "차량 결함으로 확정돼도 과징금은 최대 1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2일 "BMW코리아의 늑장 리콜 의혹에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을 알았지만 시정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자동차 매출액의 1%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 BMW의 늑장 리콜 판정이 내려질 경우, 매출 규모를 고려하면 약 70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수입차의 경우 복잡한 조직 구조가 신속한 대처를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BMW의 경우 리콜 결정은 독일 본사에서 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본사로 보고한 뒤 그 결정이 다시 한국으로 하달되기까지 과정이 복잡하고 같은 차종이 팔린 다른 나라의 상황도 고려해야 돼 조치가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김기찬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은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모델은 훨씬 다양하지만 판매량은 국산 차에 비해서 적은 편이라 검사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는 65종에서 167만여대가 리콜됐다. 반면에 수입자동차는 767종에서 30만여대가 리콜됐다.

수입차에 대한 구제 상담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 236건이었던 수입차의 피해 구제 상담 건수는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144건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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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적인 리콜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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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신속한 리콜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 교수는 "늑장 원인은 결국 법망의 허술함"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벌금을 올리고 지금보다 더 강한 벌칙 조항을 법제화시켜야 한다"며 "도를 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소비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이호근 교수는 "리콜 발표 이후에 이행률 달성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가령 몇 년 안에 몇% 달성해야 한다는 제한선이 없다 보니 기업의 적극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리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업체가 브랜드 이미지 손상 때문에 리콜을 꺼리지만 신속한 대책이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101개 기업체 리콜실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리콜 시행에 적극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소비자와 언론의 부정적인 인식'(82.5%)을 꼽았다.

이어 '소비자 불신에 따른 매출 감소'(62.9%), '소비자의 과도한 보상 요구'(58.8%), '과도한 비용 부담'(52.6%) 등이 뒤를 이었다.

한 국내 자동차 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는 문 모(45) 씨는 "리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리콜에 앞서 리콜에 해당하는 결함인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BMW코리아 기술 부문 고위 관계자는 "리콜 대상에 오른 10만6천대 중 불이 난 것은 27대뿐이다. 단 0.025%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라며 "이마저도 전부 차체 결함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화재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연간 5천대 이상의 자동차 화재가 발생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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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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