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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외출하기 두렵다는 몰카 피해자에게 "밖에 나갈 일 있으세요?" 물은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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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에 찾아와 조사 후 연락처도 남기지 않아

신임 경찰청장은 취임 첫날부터 여성 대상 범죄 대응 강조

중앙일보

몰카 일러스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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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에 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여성 최모(26)씨는 몸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했다. 오전 1시에 경찰이 찾아온 것이다. 경찰은 8초짜리 영상을 보여주며 영상 속에 나오는 사람이 본인인지 확인을 부탁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은 분명 최씨였다. 그가 사는 오피스텔의 창문은 10차선 대로 방향으로 나 있다. 경찰은 300m 정도 떨어진 6층 건물 옥상에서 한 40대 남성이 DSLR 카메라로 최씨의 모습을 불법 촬영했다고 알려왔다. 이 남성은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의 신고로 현장에서 붙잡혔다.

신고자에 따르면 이 남성은 2주 전에도 건물 옥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상한 행동을 했다. 최씨는 20층이 넘는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지만 DSLR 카메라로 찍은 불법촬영을 피할 순 없었다.

경찰의 후속 조치는 최씨를 더 불안하게 했다. 최씨에 따르면 오전 1시 오피스텔 문을 두드린 경찰은 자신의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그의 전화번호만 받아갔다.

새벽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경황이 없었던 최씨는 다음날 정신을 차린 후 서울 용산경찰서에 붙잡힌 남성이 구치소에 있는지 문의했다. 해당 남성은 3, 4시간의 조사를 마친 뒤 이미 돌아간 상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의 얼굴과 사는 곳까지 노출된 최씨는 극심한 공포에 빠졌다. 최씨에 따르면 경찰은 오히려 그에게 “저희가 무엇을 해드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물었다. 외출하기 두렵다고 하자 “밖에 나갈 일 있으세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답답함을 느낀 최씨가 청문감사실에 항의하자 경찰은 그제야 스마트워치 발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관계자는 “피해자의 외출을 막기 위해 물어본 것이 아니라 112에 신고해서 신변 보호 요청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질문이다. 피해자의 심경을 더 고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스마트워치는 착용자에게 위급상황 발생 시 버튼을 눌러 112상황실에 알리고, 실시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전송할 수 있는 기계다. 보복범죄 피해 우려가 있는 범죄피해자나 신고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2015년 10월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는 실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씨는 “그마저도 사건이 일어난 지 6일이 지난 31일까지 받지 못했다”며 “잡혔을 때 메모리 카드에는 영상이 1개였지만 다른 카메라에 영상이 더 있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 부모님 집으로 피해있다. 가해자는 문제없이 생활하고 피해자가 더 불안해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최씨가 스마트워치 발급이 필요 없다고 해서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지구대에서 현장에 갔을 때 임의동행으로 사건을 진행했고, 불구속 수사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는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스마트워치)이라도 달라고 했었다"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의 심리 상담 등에 대해 안내는 하고 있지만 피해 이후 다른 거주지로 피해 있으라거나 하는 등의 행동에 대한 고지 매뉴얼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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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4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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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민갑룡 신임 경찰청장은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직후 취임사에서 “경찰은 누구보다 여성들이 느낄 불안과 절박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청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정책도 여성범죄대책이다. 그는 데이트 폭력, 성폭력, 사이버 범죄 등으로 분산돼 있던 여성 대상 범죄 대응체계를 통합해 경찰청 생활안전국에 '여성대상범죄 근절 추진단'을 신설하고 각 지방청에는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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