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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저출산 난제 어떻게 풀까-하] 청년실업, 주거난, 양육부담…현장 목소리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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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비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저출산이 주거비, 교육비, 경력단절, 장시간 근로, '독박 육아'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 기피뿐만 아니라 비혼 상태 임신이 대부분 출산 포기로 이어지는 사회문화와도 관련 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일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엄마가 비혼 상태인 출생아 비율(비혼출산율)은 2014년 기준 1.9%로, OECD 평균 39.9%와 큰 차이를 보인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애를 낳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비혼출산율이 극히 낮다.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출산을 해도 입양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입양 아동 가운데 비혼모 아동은 전체의 91.8%를 차지했다.

비혼, 사별, 이혼 등의 사정으로 한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가정도 비혼 양육에 대한 편견과 열악한 경제적 여건으로 자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재 한부모 가정의 47%는 저소득(중위소득 52% 이하) 가구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한부모라도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아동양육비를 인상하기로 했다. 중위소득 52% 이하 한부모 가구에 지원되는 아동양육비는 만 14세 미만 아동에게 월 13만원씩이었으나, 내년부터 만 18세 미만 아동에게까지 월 17만원씩 지급한다.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 중위소득 60% 이하 24세 이하인 청소년일 경우에 지급하는 양육비도 월 18만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된다.

비혼 출산·양육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제도와 문화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

미혼모가 자녀를 기르던 중 아버지가 자녀 존재를 인지해도 종전의 성(姓)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는 원칙적으로 자녀의 성이 아버지의 성으로 변경된다.

사실혼 부부도 법적 부부와 마찬가지로 난임 시술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주민등록표상에 계부·계모 등의 표현이 드러나지 않게 법과 제도가 개선된다.

혼인 여부에 따라 취업·직무 지원 등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고,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의 임신·출산·양육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원스톱 상담창구도 운영할 계획이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애를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지 않게 된 이유로 높은 청년실업, 지나친 경쟁과 사교육비 등을 꼽고 있다.

이는 맞는 지적이지만 이같은 문제가 풀릴 때까지 마냥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제대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또 그것대로 풀어 나가야 한다.

저출산 대책 방향은 육아의 기쁨을 늘리고, 비용은 줄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도 방향은 그랬지만 실제 체감하기엔 미약했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진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출산율을 회복하려면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시민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가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인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저출산 대책을 언급하면서 "모든 형태의 출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동거커플의 출산 지원, 문화와 의식 변화 등을 주문한 바 있다.

위원회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원칙적으로 따르는 '부성 원칙주의'의 수정, 혼인 여부에 따라 신분을 규정하는 민법 및 가족관계등록법상 문제, 사실혼에 대해 법률상 결혼과 동등한 제도적 혜택을 주는 '동거관계 등록제'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이 사안들은 사회 합의와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국민 의견을 계속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이 아이 낳으면 정부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 심어줘야

이번 저출산 대책에 난임 부부 이슈가 거의 다뤄지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국내 난임 환자는 매년 20만명이 넘는다. 아이 낳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누구보다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난임 환자 10명 중 9명(87%)이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2015, 2016년 난임부부 지원 사업을 분석한 결과 난임 진단을 받은 여성은 각각 21만4588명, 22만1261명에 달했다. 부부가 자녀를 원해 1년간 임신을 시도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난임이라고 정의한다.

이 중 2015년 체외수정 시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을 해보니 86.7%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우울감과 고립감을 경험했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26.7%에 달했다.

난임 부부들은 수년 전부터 "첫아이에 한해서만이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난임 시술에 나이 제한과 횟수 제한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일보

현재 보건당국은 난임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만 44세 이하 여성, 체외수정 7회(신선 배아 4회·동결 배아 3회), 인공수정 3회로 설정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난임 시술비 지원사업에서 횟수를 다 소진해 건강보험 적용이 제한된 난임 부부에 대해서는 1~2회 추가 보장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회당 수백만원이 드는 난임 시술을 감당하기에는 건강보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임신 실패가 반복되고 난임 상태가 길어지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 거의 모든 난임 여성이 고립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을 넘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며 "자신에 대한 책망, 배우자에 대한 원망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부부관계가 멀어지거나 가족 간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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