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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외국인 등록증 있는데 왜 여권 달라고 하나요”…무용지물 행정서비스에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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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불편개선 토론회 가보니

행안부 주한 외국인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 가보니
중앙일보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소통포럼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을 털어놓고 개선 방안을 찾는 '주한 외국인과 함께하는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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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등록증이 있어도 꼭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해요.”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1층 열린소통포럼장. 이곳엔 오후 2시부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주한 외국인과 함께 하는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는 행안부가 외국인이 실제 생활에서 공공기관을 이용하며 느끼는 불편을 듣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했다. 행안부가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런 행사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토론회엔 김부겸 행안부 장관을 비롯해 메네세스 코로나도 주한 과테말라 대사, 마리아 소피아 카세레스(아르헨티나 회사원)씨, 우르피아나 투라예바(키즈키즈스탄, 서울시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위원장)씨 등 주한 외국인 약 20명이 참석했다. 토론회는 ‘외국인 생활 불편사항 개선’ 세션과 ‘외국인 기업활동·근로·유학 등 불편사항 개선’ 세션으로 진행됐다.

여권 없으면 생활 어려워…슈퍼도 못 가

중앙일보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소통포럼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을 털어놓고 개선 방안을 찾는 '주한 외국인과 함께하는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메네세스 코로나도 주한 과테말라 대사(가운데)와 아르헨티나에서 온 회사원 마리아 소피아 카세레스 씨, 키르기스스탄 출신인 우르피아나 투라예바 서울시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위원장 등 주한 외국인 10여 명이 참석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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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지내는 다양한 어려움을 말했다. 공통으로 꼽는 어려움은 신분확인 절차의 번거로움이었다. 메네세스 과테말라 대사는 “한국에 오는 경우 외국인 등록증이 발급되고, 외교관에겐 외교관등록증이 발급되는 데 한국에선 이것이 공식 신분증이 아닌 것 같다”며 “휴대폰을 개통하려고 해도, 공공기관·은행 서비스, 심지어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도 여권을 제출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한 외교관들 사이에선 이런 점 때문에 외교관등록증이 외교부를 출입할 때만 필요하다는 농담을 한다”고 말했다.

까세레스씨도 “외국인등록증이 있는데도 어딜 가든 여권을 요구한다”며 “한국 정부 차원에서 각 기관에 외국인등록증이 유효한 신분증이라는 걸 확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 출신의 학생 보키에프 아흐로르존씨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서비스 문화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는 “구청에 가자 (공무원들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졌다. 제가 영어로 물어보면 못 알아들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며 “이런 시선이 싫어 요즘은 일부러 온라인 서비스로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온라인서비스를 이용해도 인터넷익스플로러에서만 이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불편하다”며 “여기에 추가로 설치해야 할 프로그램도 많고 다 한국어로 돼 있어 도통 어떤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의 원옥금씨는 “외국인 동포들 간 신년회 등 단체행사에 쓸만한 공간 찾기가 어렵다”며 “관공서는 공무원이 쉰다고 주말에 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공간을 빌려줘도 음식물을 들여올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주민청 만들어야…다양한 언어 서비스 필요

중앙일보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소통포럼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을 털어놓고 개선 방안을 찾는 '주한 외국인과 함께하는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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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들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도 내놨다. 크리스챤 안찰루이자 주한 에콰도르 영사는 “언어 문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요일별로 언어를 서비스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월요일은 스페인어, 화요일은 영어, 수요일은 중국어 이런 식으로 해주면 많은 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주민참여를 위한 중앙부처 차원의 대표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투라에바 위원장은 “서울시나 안산시 등 일부 지자체엔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를 통해 정책제안과 시정 참여가 이뤄지고 있지만, 중앙부처에는 없다”며 “외국인주민청을 만들고 그 산하에 외국인 대표자 회의를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에바 무어 주한 벨기에 대사관 담당관은 “연구자를 위한 E-3 비자 발급 요건이 현재 관련 분야의 3년 연구경력이 있는 석사 또는 박사 학위자만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충족시키는 연구원은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외국인 근로자 고용 관련 비자 발급요건 완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부겸 장관 "행정부 수장으로 부끄러워…전향적 자세로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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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주한 외국인과 함께하는 공공서비스 개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외국인 생활 불편사항 및 공공서비스 개선과 외국인 기업활동·근로·유학 등 불편사항 개선에 대해 토론을 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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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들은 외국인들의 지적을 듣고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명훈 법무부 체류관리과 사무관은 “외국인 등록증만으로 행정업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부분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언어 부분도 각 부처에서 통역을 더욱 철저하게 해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수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외국인 사업장 변경’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지적에 대해 “많이 개선했음에도 이 부분이 어렵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사업장 변경 사유를 완화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부겸 장관은 “(한국이) 국민소득 3만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언어와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무런 배려 없이 살아왔다”며 “행정부처의 수장으로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그러면서 “주한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다”며 “불과 30~40년 전 흩어졌던 한국인 이민자들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 좀 더 용기를 내도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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