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에 앞서 한국 취재진들과 만난 매트 골드버그 IRE 의장은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보도는 단연 ‘미투’ 관련 세션”이라며 “지난 1년간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치열하게 취재한 후일담에 주목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IRE의 연례 컨퍼런스는 미 전역의 주요 탐사보도 기자들이 자신들의 취재 후일담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로 매년 여름 열린다. 미투 관련 여러 세션 중에서도 15일 오후(현지시간) 열린 ‘미투 쇼케이스’는 지난해와 올해 미투 관련 굵직한 특종보도를 한 현지매체 기자 4명이 연사로 참여해 총회 참가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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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이후 분명해진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해준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대한 존중이 커졌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이제껏 묵살돼 왔기 때문에 본인이 증언을 해도 보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컸는데, 하비 웨인스타인 사건 이후 분위기가 바뀐 것 같습니다.”
이날 강연자로 쇼케이스에 참여한 뉴올리언스 타임스 피카윤(New Orleans Times-Picayune)의 브렛 앤더슨 기자는 미국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뉴올리언스의 유명 요리사 존 베쉬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꾸준히 추적 보도를 해 왔다. 앤더슨은 “존 베쉬 사건을 보도했을 때 흔히 들었던 얘기가 ‘다른 레스토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사람만 골라서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투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백래시(backlash)’가 거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발은 그만큼 해당 업계의 성폭력 범죄가 뿌리깊게 만연해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할리우드의 거물급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레베카 코벳 뉴욕타임스 기자는 이날 연단에 올라 “미투 관련 탐사보도는 유명인 단 한 명의 성범죄를 단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정치인 로이 무어의 성범죄를 추적해 폭로한 워싱턴포스트(WP)의 베스 레인하드 기자는 성범죄 관련 보도의 치밀한 검증 과정에 대해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레인하드는 “사건이 보도된 뒤 피해 여성의 과거를 파헤쳐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피해자에 대한 사전 조사도 철저하게 했다”면서 “물론 피해자의 범죄 전력이나 과거에 대해 세세하게 묻는 것이 어렵고 불편한 일이지만, 보도 전에 피해자에게 이런 상황과 이유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증언의 신빙성이 곧 보도의 신빙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레인하드는 로이 무어 사건 보도가 큰 파장을 일으킨 뒤, 추가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겠다며 접촉해온 이들 가운데 이런 ‘검증’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사례들이 있었다고도 전했다. WP 보도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보수 쪽의 함정과 반격, 이른바 ‘프로젝트 베리타스(Project Veritas) 사건’이었다.
이는 ‘프로젝트 베리타스’라는 보수성향 단체가 WP에 거짓 피해자를 내세워 접근한 사건으로, 이 단체는 진보성향 언론사나 단체를 표적 삼아 위장 활동을 하고 대화 내용을 녹취·폭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WP는 당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 여성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 등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결국 프로젝트 베리타스가 파놓은 ‘함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WP의 탄탄한 취재력과 철저한 검증을 입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WP는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사와 영상을 자사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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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사회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래리 나사르’ 사건을 보도해온 마리사 키아트코프스키 인디아나폴리스스타 기자도 성폭력 사건 보도에 있어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30년간 체조선수 156명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75년을 선고받은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 사건을 꾸준히 탐사보도 해 왔다. 그에 따르면 법원 선고 이후에도 추가적으로 늘어난 피해자는 총 300여명에 달한다.
키아트코프스키는 “독자들에게 이 의사가 저지른 행동이 그저 손이 미끄러져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성범죄’라는 점을 알리려면 피해자들에게 세세한 부분들까지 모조리 질문하고 확인해야 했다”면서 “나사르와 과거 태국 음식점에서 자주 데이트를 했다는 여성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그 태국 식당을 찾아 1979년에도 이 식당이 존재했는지, 그들이 즐겨 먹었다는 메뉴가 그 때도 있었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자가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검증과 확인이 보도를 탄탄하게 하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올랜도|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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