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임영택의 고전시평] 잘 버리는 것이 최고 전략, 축구와 인생은 닮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팩트

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을 잘했던 자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든 뒤 내가 적을 이기게 될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러시아 월드컵 4강에 오른 프랑스는 무실점 경기를 3차례나 펼치며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사진은 프랑스-우루과이전./니즈니 노브고로드(러시아)=AP.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날씨에도 월드컵 축구를 보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의 연속이다. 4년 만에 열리는 지구촌의 축제이니 몸은 피곤하더라도 보는 즐거움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제 러시아 월드컵 4강의 대진표가 완성됐다.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과 크로아티아가 4강에서 격돌하며 최종 우승국을 가리기까지 단 두 게임만이 남아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낌이 다른 법이다. 축구는 공을 갖고 무작정 달려서 골대에 집어넣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단순하다면 감독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는 없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동네에서 동호인들이 그저 체력관리와 사교에 주안점을 두는 경기가 아니라면 승부를 다투는 축구는 ‘머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수 개개인도 우수한 육체적 능력 못지않게 두뇌가 필요하지만 팀도 정신적 능력이 중요하다. 선수는 공간을 찾거나 공의 낙하 지점을 예측하고 동료와 팀플레이를 하거나 전술을 이해하는 데 두뇌회전 능력이 필요하다. 그저 그런 선수가 아닌 남들보다 탁월한 선수가 되려면 타고난 육체적 능력과 끊임없는 훈련 못지않게 우수한 두뇌가 있어야 한다.

팀의 정신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감독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능력은 한국축구를 말할 때 늘 등장하는 정신력과는 다른 개념이다. 경기에서 정신력은 투지와 사기를 말한다면 정신능력은 전략과 전술을 기획하고 운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관전을 하는 입장에서는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여 승리하기를 바라지만 공격만이 최선은 아니다. 승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무턱대고 ‘공격 앞으로’를 외쳐서는 이기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과 초등생이 경기를 하지 않는 한, 국가대표나 프로 팀들 사이의 경기력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팀의 성적이나 선수들의 몸값은 참고자료일 뿐, 승률이 높고 선수들 몸값의 총합이 많은 팀이 이길 확률이 높을 뿐이지 항상 이기지는 않는다. 축구계에 회자되는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듯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강팀이 승률을 높이거나 대등한 실력의 팀이 상대를 이거나 약팀이 강팀을 이기려면 감독의 탁월한 전략·전술 기획능력과 선수들의 실행력이 관건이다.

축구 팀 승리의 중요한 요소인 전략과 전술의 생명력은 유연성과 임기응변이다. 축구의 보편적인 철학과 고정된 트렌드는 없다. 어떤 전략과 전술을 보편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전략과 전술의 의미는 없어진다. 축구 경기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는 매우 많다. 우선 우리 팀 선수들의 개인기술 및 체력을 살펴 가장 잘할 수 있는 팀 전술을 선택해야 한다. 다음으로 실제 게임에서는 상대 팀의 전력과 경기에서 이기고 비기고 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수비 축구가 오답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승리를 위해서 수비 축구를 구사할 수도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강팀의 최우선 조건은 사실 공격력이 아니라 수비력에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프랑스는 무실점 경기가 3번, 벨기에는 2번, 크로아티아는 2번, 영국은 1번이었다. 조별 상대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강팀일수록 무실점 경기도 많고 실점도 적었다.

'손자병법'에 “전쟁을 잘했던 자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든 뒤 내가 적을 이기게 될 때를 기다린다. 불패는 나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는 말이 있다. 요컨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나의 허점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논리를 축구에 적용하면 우리의 수비력을 강화하여 실점을 하지 않도록 준비한 상태에서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여 골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쟁이나 축구나 인생이나 ‘직진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의 철저한 준비와 실수를 줄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형도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팀 및 상대 팀의 전력의 차이와 경기에서 이기고 비기고 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 팀이 객관적으로 전력이 강하면 공격진의 수를 늘려서 가급적 빨리 그리고 많은 득점을 노리고,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 및 역전골을 노릴 때는 시간대에 따라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늘리는 초강수를 쓰기도 해야 된다. 여러 조건 및 상황에 따라 전형도 유연하게 바꿀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손자는 “대비하는 곳이 많다 보면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전략은 끊임없이 버린 선택의 결과이다. 전쟁이나 축구나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해야 한다. 잘 버리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하다가는 헛고생만 하고 얻는 것은 없다. 고정불변하고 보편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오직 상황과 조건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고 변화를 거듭해야 승자가 될 수 있다. 축구와 인생은 닮았다.

더팩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thefact@tf.co.kr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