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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재벌개혁 앞장설 '코드 본부장' 찾다가 1년 날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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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째 공백 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코드' 논리와 정치 논리를 무리하게 개입시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곽태선 전 대표를 떨어뜨리는 데 병역 문제를 들먹이는 건 핑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의중을 잘 읽고 말 잘 들을 코드 인사를 앉히려다 국민 개개인의 노후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현 정권이 기금운용본부장의 코드 인사에 집착해온 이유는 국민연금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지렛대로 보기 때문이다. 먼저 확장적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래서 여당은 국민연금 기금을 '공익적' 목적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번 총선에서 국민연금 기금 100조원을 공공주택 건설에 투자하는 방안을 '경제민주화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국민연금은 또한 삼성전자·현대차·네이버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의 최대 또는 주요 주주여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경제 공약인 '재벌 개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가세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검찰 등과 함께 재벌을 4면에서 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도 국민연금을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뜻하는 말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기업에 대한 입김이 커진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민연금에 막중한 역할을 기대하다 보니 정권의 의도를 순순히 따라줄 인물을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금운용본부장 후보군 사이에서는 이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인선이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해 후보로 거론됐던 한 인사는 "보수도 그다지 많지 않고 퇴임 후 취업 제한까지 걸려 있는 데다 자칫하면 '험한 꼴'까지 볼 수 있는데 뭐 하러 가겠나"라고 말했다.

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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