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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등록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5곳은 지난 3월 말 기준 자본금이 설립 때보다 줄어든 자본 잠식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가 누적된 결과다.
정부가 2016년 1월 로보어드바이저를 띄우겠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2년여가 지난 현재 실적은 처참하다. 정부 규제와 대형 금융사들의 갑질 횡포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6월 규제 완화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엔 좀비 업체만 남았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대표는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들고 물 주는 꼴"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규제 아래 자본 잠식된 로보어드바이저
5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의 총자본금은 반 토막 났다. 지난 3월 말 현재 134억원으로 초기 자본금(239억원) 대비 105억원(44%) 감소했다. 쿼터백자산운용이 초기 자본금 77억1000만원에서 48억원(62%)을 까먹어 자본 잠식 규모가 제일 컸다.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들은 사실상 일반 고객 영업은 포기한 상태다. 파운트의 경우 회사에 투자를 일임한 고객 숫자가 3월 말 1명에 불과했다. 일임 고객 자산 규모의 경우 아이로보는 6000만원에 그쳤고, 파봇은 5억7000만원이었다. 먹거리가 사라지자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와 변액보험 시장 등을 기웃거리고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비대면 일임 제한이었다. 창구에서 자문·운용 인력이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투자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상에서 투자 자문 등을 받은 뒤 투자를 결정하도록 하는 게 로보어드바이저인데, 투자자들이 창구를 찾도록 하는 엉뚱한 규제를 적용한 것이다.
올해 비대면 일임 규제가 완화됐지만, 최소 자본금 요건의 경우 40억원으로 일반 투자 일임업 자본금 기준인 15억원보다 더 높다.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로선 언감생심이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대표는 "비대면 일임 허용에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헤매는 동안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는 10배 성장
대형 은행·증권사들의 갑질도 중소 로보어드바이저 기업들로선 커다란 벽이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는 최근 대형 은행이 자신들의 상품과 거의 비슷한 모바일 상품을 출시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같이 협업하자고 접근해선 베껴서 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다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는 대형 증권사 자회사로 편입된 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해고당하기도 했다.
정부 규제와 대형사들에 치이면서 토종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이 자본 잠식으로 몰리는 사이 해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발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베터먼트(Betterment)는 운용 자산 규모가 2015년 2월 14억달러(약 1조5600억원)에서 3년여 만인 지난 3월 135억달러(약 15조원)로 10배로 성장했다. 다른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웰스프런트(Wealthfront)도 이 기간 운용 자산이 20억달러에서 100억달러로 5배 수준이 됐다.
유럽·일본·싱가포르 등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 분야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비대면 일임 규제를 완화해도 자본금이 40억원 이상이면 너무 높다"며 "규제를 제거하고 불완전 판매 등은 감독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석 기자(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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