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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금감원장 윤석헌이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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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두 달 만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자기 색깔이 담긴 '금융 혁신 청사진'을 내놨다. 윤 원장이 내건 금융 혁신 화두는 '소비자 보호'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은행과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윤 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 감독 혁신 과제 17건을 발표했다. 그가 취임할 때 일각에서는 교수 출신 금감원장으로서 강도 높은 금융 개혁에 나서고, 금융 정책을 수립하는 금융위원회에 대해서도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윤 원장은 "금융회사 감독에 집중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금융시장에서 불안 요소가 늘고 있어 '관치'라고 욕을 먹더라도 감독을 강화해 소비자 보호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주변과 불필요하게 갈등하지 않고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 위해 전쟁하겠다"

윤 원장은 이날 "금융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불완전 판매' 관행에 대해서 금융회사와 전쟁을 벌여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리 상승 속 가계 부채 증가,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 일부 은행의 금리 조작, P2P(개인 대 개인) 대출 회사의 투자자 피해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고 있어 금감원이 과감하게 개입해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경남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 적발된 대출 금리 부당 부과와 관련한 조사를 올 하반기에는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확대한다. 또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저축은행이 과도한 금리를 매기지 않았는지 그 실태를 공개하기로 했다.

금융회사별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얼마나 갖췄는지 평가하는 등급제도 도입한다. 이른바 '배드 리스트'(Bad List) 제도다. 평가 결과가 나쁜 금융회사에는 소비자 보호 자문관을 파견해서 감시하게 할 전망이다. 윤 원장은 "금리나 수수료 등 가격에 대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겠다"면서도 "(경남은행 사례처럼) 금리 오류가 1만건이 넘는 것은 단순한 일탈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키코(KIKO) 사건에 대한 재조사도 실시한다. 과거 별도 소송 등을 진행하지 않은 다섯 회사를 대상으로 올해 안에 절차를 거쳐 해당 기업들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살피기로 했다. 키코는 달러 등 외화 가치가 특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수출 기업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해주는 파생 금융 상품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때 달러 값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 폭등하면서 수출 기업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금융권에선 윤 원장의 발언에 대해 우려가 나왔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전쟁'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금융회사들을 마치 범죄 집단처럼 몰아가는 것은 문제"라며 "금감원이 지난 일들만 파헤치지 말고 금융회사들이 시장 기능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미래 지향적 관계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CEO '셀프 연임' 제동

윤 원장은 앞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감시·감독을 전반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 조치 중 하나가 작년부터 전면 중단된 금융회사에 대한 종합 검사를 올 하반기 부활시키기로 한 것이다.

지배 구조 개선이나 소비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준비가 소홀하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의 전반적 시스템을 살피겠다는 취지다.

또 금융지주회장이 스스로 연임을 결정하는 '셀프 연임' 관행이나 금융지주의 경영 승계 계획 등 지배 구조와 관련한 실태 점검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내년 상반기 금융회사 지배 구조만 별도로 살펴보는 전담 요원도 만들기로 했다.

또 견제 장치 마련 차원에서 금감원의 금융회사 평가 때 사외이사 후보에 얼마나 다양한 인물을 포함했는지도 반영하기로 했다. 특히 근로자 추천 이사제(이른바 노동이사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교수 시절부터 윤 원장의 소신이자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금감원은 금융회사가 관련 공청회를 열도록 독려하고,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 여부와 이유 등을 공시하게 하기로 했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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