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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 |
정부 수립 이후 계엄령이 선포된 사례는 열 번이다. 1948년 여순사건 때문에 여수·순천 일대에 내려진 계엄령이 최초다. 이후 4·19혁명, 5·16 군사정변, 10·26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등장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네 번, 박정희 시대 네 번, 전두환 시대 두 번이다. 계엄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 군 병력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된 경우가 많아 대다수 국민은 모골이 송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한 5·17 전국 비상계엄 확대 조치 이후 역사 속 단어가 됐던 ‘계엄령’이 다시 등장했다. 한 여당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이후 계엄령 선포를 기획했다는 기무사 문건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군인권센터는 구체적 부대 동원 계획이 적시된 문건까지 공개했다. 인터넷에서는 “촛불시위 나갔다가 다 죽었을 뻔. 후덜덜” 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과장됐다는 반박도 나온다. 문건은 ‘탄핵 결정 이후 폭도들의 경찰서 무장 탈취, 국가 기간시설 습격, 경찰의 치안유지 기능 상실’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전제했다. 탄핵 기각 상황뿐 아니라 인용에 따른 혼란도 상정했다. 촛불 세력뿐 아니라 태극기부대에 대한 경계도 담겨 있다. 실행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비상 검토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문건을 만든 사람이나, 폭로한 측이나 당시 상황에서 실제로 군이 나설 수 있다고 봤을까. 국민소득 1600달러였던 해 마지막으로 있었던 일이 3만 달러 언저리 시대에서도 가능했을까. 그랬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가만 있었을까. 군인들은 순순히 말을 들었고, 우리 국민은 그냥 숨죽였을까. 문건 작성과 폭로 경위를 모르고서야 이런 상상은 그냥 부질없는 소설일 뿐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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