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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지옥같은 전쟁터…한줄기 빛이 된 `비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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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화씨 451'이라는 소설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화하기도 했던 책으로, 스토리가 조금 독특하다. '화씨 451' 세상에선 책을 읽는 게 법적으로 금지된다. 혹여 '미친 소방수'들의 불심검문에 의해 집에 책이 있는 것이 발각된다면, 그 책의 주인은 체포된다. 그리고 발각된 책은 곧장 불태워진다. 이 때문에 비밀리에 반정부 인사들은 숲 속 깊숙이 숨어드는데 재밌는 건 이들이 아예 주옥 같은 고전들을 통째로 외워버린다는 설정이다. 소지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각자 머릿속 도서관에다 보관하겠다는 것.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화씨 451'의 현실 버전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다. 책은 포탄과 총성이 난무하는 시리아 내전의 폐허 속에서 지하에 비밀 도서관을 꾸린 청년들의 실화을 다룬다. 세상이 파국이어도 끝끝내 지켜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 이 책이 건네는 물음이다.

여기, 매달 600여 차례 폭격이 쏟아지는 곳이 있다. 8년간 35만명이 사망하고 1000만명이 넘는 난민을 낳은 시리아 내전의 중심 도시 다라야다. 다라야는 1980년 5월의 광주와도 같은, 아니 그 이상인 곳이다. 때는 2011년 아랍의 봄 초기. 비폭력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다라야는 정부 눈 밖에 난다. 도시는 봉쇄됐고 폭력적 진압이 시작됐으며, 인륜을 무시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됐다. 그러다 2013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21세 시리아 청년 아흐마드는 정부군에 저항하던 중 어느 허물어진 집터 앞에 멈춰선다. 전쟁통에서 책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 아흐마드는 그 순간을 이처럼 표현한다. "내가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 일었다."

일주일 만에 모은 게 6000여 권, 한 달 뒤에는 1만5000여 권이었다.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희곡, 파울루 코엘료의 '연금술사', 마르셀 프루스트와 쿠체, 니자르 카바니와 역사학자 이븐 카임의 저서 등 분야와 종류를 막론했다. 이에 아흐마드는 동료들과 어느 건물 지하를 근거지로 삼는다. 그리고 책장을 세워 이 모든 책들을 꽂는다. 로켓의 사정권에선 멀었지만 저격수들이 근처에 있었으므로 건물 지하 창문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은 훗날 정부의 네이팜탄으로 무너질 때까지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돼준다.

책은 프랑스 출신 저널리스트 델핀 미누이가 썼다. 계기는 2015년 10월 '시리아 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조우한 '지하 도서관' 사진 한 장. "생경한 장면이었다. 지옥 같은 시리아에서 혈흔도 탄흔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수수께끼 같은 사진 한 장.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남자의 옆모습…." 이후 아흐마드를 비롯한 이들 청년들과의 스카이프 대화에 기반해 저자는 그들 이야기를 오롯이 글로 옮긴다.

프랑스 르텔레그람은 이 책을 두고 "세계의 야만과 직면했을 때 책이 지식과 문화로 눈부신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 증거"라고 썼는데,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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