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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사진속 한국전쟁①] 파괴된 일상과 전쟁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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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공개

아시아경제

고향을 등진 피난민 가족(1951.3.1) =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길을 나선 피난민 가족의 모습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남이건 북이건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가재도구만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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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국사편찬위원회가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25일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22일 공개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쩍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일상과 평화를 담은 사진자료들을 통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누구인지, 평화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국편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으로, 국편 전자사료관 홈페이지(http://archive.history.go.kr)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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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피난민(1950.7.7) =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전선(戰線)으로 급히 투입됐다. 고향을 등진 피난민들은 전쟁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전선으로 향하는 군인의 행렬과 전선을 피해 피난을 떠나는 피난민의 행렬이 서로 엇갈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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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검사(1950.10.15) = 미군 병사가 민간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살피고 있다. 이념에 따라 편이 나뉘면서 같은 조선사람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이 낯설었던 미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불안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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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들의 이별(1950.12.18) = 한국전쟁 초기의 전황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그 때문에 신병 보충 역시 긴급하게 이뤄졌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입대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입대 직전의 신병이 대구역에서 열차에 오르기 직전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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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마스코트(unit mascot)'(1950.9.23) = 전쟁이 사람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나 노인, 여성 등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전쟁으로 겪는 고통은 특히 더 컸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중 일부는 '부대 마스코트(unit mascot)'라고 해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며 부대와 함께 다니기도 했다. 이들 중 몇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정식 입양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의 소년 역시 부모를 잃고 미군 부대에 들어간 부대 마스코트이다. 소년이 미군에게 커피를 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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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의 아이들(1950.10.31) = 미군 점령하의 원산 인근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부대 인근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이 수십 년 전의 여느 시골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이 촬영되고 약 2개월이 지난 후 공산군이 원산을 점령했고, 공산군의 산업 중심지였던 원산은 다시 유엔군의 주요 폭격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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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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