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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열세살에 40차례 車 절도… 그를 보듬을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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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등돌린 중학생 절도범



동아일보

그래픽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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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처벌 못하잖아요. 빨리 풀어주세요. 찜질방 갈래요.”

토요일인 2일 오전 1시경 경기도의 한 지구대에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만큼 어려 보이는 한 소년이 경찰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하얗고 통통한 얼굴의 소년은 삐딱한 자세로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날 소년은 오토바이 2대를 훔쳐 타고 다니다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너 인마, 또 사고 쳤냐? 벌써 몇 번째냐.”

소년을 바라보던 경찰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앞서 소년은 지난달 17일 한 교회 주차장에 서 있던 버스를 훔쳐 운전하다 사고를 내 경찰에 붙잡혔다. 바로 전날에는 오토바이를 훔쳤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뒤늦게 소년의 절도 행각을 파악한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차량과 오토바이 절도가 40건이 넘었다. 소년의 나이는 불과 13세였다.

○ 훔치는 게 일상이 된 아이

소년의 이름은 한명빈(가명).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한 군이 열 살 무렵 부모가 이혼했다. 아빠의 잦은 폭행이 원인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사업 문제 때문에 감옥에 갔다. 한 군은 엄마와 살게 됐다. 하지만 엄마가 재혼하면서 한 군은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한 군이 열한 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한 군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깃들기 시작한 때도 그 무렵이다. “건드리면 누구든 패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때다. 한 군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 엄마 할머니 이모 모두 담배를 피웠다. 늘 내 눈앞에 담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군은 어릴 때부터 유달리 자동차에 집착했다.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차량 절도에 집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첫 번째 절도 대상은 삼촌이었다. 한 군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 삼촌의 승용차 보조열쇠를 훔쳤다. 평소 운전석에 앉은 아빠와 삼촌의 모습을 떠올리며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결국 주차 중이던 승합차와 충돌한 뒤 300m가량 더 달려가다 마주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그때 사건으로 한 군은 소년원 보호 처분 1년을 받았다. 1개월은 소년원에서, 나머지 11개월은 한 성당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센터에서 지냈다. 한 군은 “처음에 재판받고 소년원 갈 때 무섭긴 무서웠다. 그래도 센터에선 선생님이 잘 대해줬다. 그때는 ‘마음잡고’ 살았다”고 털어놨다.

○ 법도, 사람도 아이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올 3월 한 군은 중학생이 됐다. 그러나 결석과 무단 조퇴가 이어졌다. 지난달 말부터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는 한 군을 ‘장기결석학생’으로 분류했다. 그 사이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는 아무 대화가 없었다. 학교 측이 가정방문이나 부모 면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학교 관계자는 “한 군의 부모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할머니에게 문자를 남기면 며칠 후에야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이른바 ‘문제학생’에 대한 학교 측의 교육은 전무했다.

한 군은 소년법에 따라 주기적으로 보호관찰관과 면담해야 한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 교육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 군은 단 한 번도 면담이나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차량과 오토바이 절도 행각을 이어갔다. 그러나 담당 보호관찰관은 학교의 연락을 받고서야 뒤늦게 한 군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됐다. 한 군은 “교육에 가지 않아도 별 다른 연락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도 한 군의 연이은 범죄를 막지 못했다. 소년법상 만 14세 미만 청소년은 구속 수사를 할 수 없고, 형사처벌 대신 소년 보호처분을 해야 한다.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미성년자는 보호자 입회하에 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 군의 경우 보호자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군은 상담교사에게 “단란한 가정에서 살고 싶다.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커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한 군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8일 소년분류심사원(미결 소년범 수용시설)에 들어갔다.

한 전문가는 “보호관찰관 한 명이 130명이 넘는 학생을 담당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소년범의 재범을 막기 위해 보호관찰관을 늘리고 학교에서도 소년범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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