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
집을 짓겠다고 건축가를 찾아갔는데 이런 질문이 적힌 시험지를 받는다면 어떨까. 실제로 젊은 건축가 그룹 ‘푸하하하 프렌즈’가 고안한 방법이다. 과묵한 건축주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30문항에 점수까지 매겨져 있다.
형식은 재기발랄한데, 내용은 진지하다.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퇴근 후 집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소상히 묻는다. 답하다 보면 건축주의 취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마치 진찰 과정 같다. 건축주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집을 짓는다. 건축가는 공간을 처방하는 의사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막힌 건축 처방전을 받은 일본인 모리야마를 만났다. ‘베카&르모안: 생활밀착형 건축일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건축영화 특별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영화감독 듀오인 일라 베카와 루이즈 르모안은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찍는다. 도쿄 교외에 있는 모리야마의 집(사진)은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SANAA)가 2005년 설계했다.
모리야마 주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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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290.07㎡ 규모의 땅에 하얗고 네모난 건물 10채를 옹기종기 지었다. 한 채의 크기라고 해봤자 16~30㎡ 정도다. 현재 집주인이 4채를 쓰고, 6채는 세를 놓고 있다. 집은 마치 독립된 건물로 이뤄진 마을 같다. 건물 사이사이 작은 마당과 우거진 나무가 있다. 그야말로 숲속 같다.
모리야마의 침실·거실·부엌·욕실은 별채처럼 지어졌다. 침실에서 부엌으로 가려면 작은 마당을 지나야 한다. 그는 하루종일 집 안을 여행하며 산다. 건축가는 모리야마를 대도시 도쿄에 사는 자연인이자, 생활 여행자로 만들었다. 터는 그대로인데 삶이 바뀐 것은 탁월한 건축 처방전 덕이었다. 모리야마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이를 증명했다. “피스풀(Peaceful).”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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