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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필동정담] 집배원의 라돈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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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라돈 침대'가 지난 주말 이슈였다. 우체국이 16~17일 집배원과 행정직원 3만명을 총동원해 대진침대 매트리스 2만2300개를 수거했다. 대진침대가 차량임차료 등 실비용을 부담하고 휴일 근무수당은 우정본부가 자체 지불했다.

근데 왜 우체국 집배원이 침대를 수거하게 됐을까. 사연은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4일 주례회동을 했다. 이 총리가 "라돈 침대를 6월까지 수거하기 위해 우체국망을 일시 이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고 문 대통령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수거"라며 화답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15일 대진침대에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되는 매트리스 8만개 수거를 명령했는데 그때까지 수거한 물량이 1만6000개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라"고 다그치자 집배원의 침대 수거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6·13 지방선거를 전후한 이 즈음이 집배원들에겐 특별히 고달픈 시기다. 공보물과 사전투표 용지를 배달하느라 주말과 밤낮이 없었다. 이런 마당에 선거가 끝나자마자 침대 수거명령이 떨어졌으니 볼멘소리가 터져나온 건 당연지사다. 이들이 주말인 16~17일 침대 수거에 나선 이유도 평일에는 기존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국 집배원은 1만6000명에 이르는데 그중 최근 5년간 암·뇌혈관 질환·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한 집배원이 70여 명에 이른다. '과로사'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우편법에 따르면 집배원은 '편지·등기 또는 30㎏ 이하 소포'를 배달하도록 돼 있다. 침대는 그야말로 뜬금없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는 '집배원도 국민이다' '집배원을 살려주세요' '집배원이 국가의 막노동자인가' 등의 글이 10여 건 올라와 있다.

우정본부의 평가는 긍정·보람 일변도다. "직원들이 처음엔 당황했고 일부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으나 침대 수거작업을 마친 뒤에는 98%가 우체국의 저력을 확인하고 공무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일선 집배원들도 과연 똑같은 생각인지는 의문이다. 보람을 강조한 우정본부 관계자조차 "이제 추가로 라돈 침대를 수거할 여유는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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