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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충무로에서] 팻핑거에 대한 美·中의 다른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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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직역하면 '뚱뚱한 손가락'이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손가락이 굵어 숫자를 잘못 입력해 사고 쳤다는 의미로 쓰이는 '팻 핑거(fat finger)'. 2013년 여름 글로벌 금융시장에 유난히 많았는데 그중 뉴욕과 상하이에서 터진 두 개의 사건이 상징적이다.

8월 20일 미국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에서는 소프트웨어 오작동으로 17분간 옵션거래 수만 건을 일으켜 시장가격이 급등했다. 비정상적 거래를 즉각 알아차린 곳은 뉴욕증권거래소로 잘못 주문된 거래의 80%를 취소시켰다. 골드만삭스는 사고처리반을 꾸리고 기술장애 발생 책임을 물어 정보기술(IT) 책임자 4명에게 정직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전산시스템 재정비에 돌입했다.

4일 전인 16일 상하이증시에서는 중국 광다증권이 주문 실수를 냈다. 주식 3000만주 매수 주문을 냈어야 하는데 30억주를 주문하면서 상하이증시가 2분 만에 6% 급등한 것이다. 사고를 알아차린 중국 증권감독위원회는 2주 후 이 증권사에 5억위안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고 쉬하오밍 광다증권 사장을 비롯한 직원 4명을 해임시켰다. 당시 중국 7위 증권사였던 이 회사로선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벌금 규모였다. 10여 년간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와 중국 증시의 베테랑이었던 쉬 사장은 이 일로 다시는 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광다증권 역시 증권사의 고유계정으로 거래하는 프랍트레이딩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미국과 중국이 팻 핑거에 대처하는 방식은 달랐다. 미국은 우선 잘못된 거래를 수습하고 거래시스템을 정비했는데 중국은 간판 CEO를 해임하고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 감독당국은 이 사태로 골드만삭스 CEO를 해임하지 않았다. 그런 여론조차 없었다. 골드만삭스는 웬만한 IT 기업보다 많은 IT 인력을 보유한 금융회사로 거듭났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사고수습반을 맡았던 이가 얼마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미국 경제를 이끌었던 게리 콘 전 골드만삭스 최고운영책임자(COO)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주 팻 핑거 사태가 감독원의 심판대에 오른다. 삼성증권이 지난 4월 우리사주 배당금 입력 사고로 있지도 않은 주식을 유통시켰던 이른바 '유령주식 사태'다. 오는 21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제재심에서는 삼성증권 전·현직 CEO 중징계와 함께 영업정지 등이 내려질 것이라고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국의 '얼차려식' 접근법이다. 매년 금감원이 증권사를 대상으로 상시·특별 검사를 하는데도 못 잡아낸 것을 이제 와서 CEO를 경질하고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팻 핑거 처리의 정석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비싼 수업료만 내고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한예경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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