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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북미정상회담의 손익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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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뉴욕(미국)=송정렬 특파원] [편집자주]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기까지 100년을 기다린다해도 나는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요하네스 케플러)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순 없지만,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많은 '메아리'를 부탁드립니다.

[송정렬의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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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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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할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1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을 통해 세기의 핵담판 결과를 폭풍 홍보했다. 하지만 회담결과에 대한 미국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싸늘하다. 비판의 요지는 공동합의문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목표였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이 빠지는 등 한마디로 북한의 비핵화 실천을 담보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71세의 노회한 협상가 트럼프가 정말 34살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완패를 당할 것일까. 사실 공동합의문 내용만으론 충분히 그런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공동합의문의 내용들은 크게 보면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판문점 선언의 연장선이다. 또 과거 미국이 북한과 맺은 이전 핵합의에 비해 그리 눈에 띄는 진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대뜸 한미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물까지 안겼으니 '퍼주기'라는 불평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보다 상황을 냉정히 봐야할 필요가 있다. 협상의 기본 원칙은 주고받기다. 몇천원짜리 물건값을 흥정할 때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하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겨우 성사된 북미정상회담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목숨줄인 핵을 담보로 회담장에 나왔다. 더구나 북한은 억류미국인 석방, 핵실험장 폭파 등 신뢰를 쌓기 위한 성의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트럼프가 이런 상황에서 CVID 사실상의 항복선언을 계속 고집했다면 판은 진작 깨졌을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사실 김정은을 핵회담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다. 전임자 오바마를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못했던 성과다. 또 김정은을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시킴으로써 김정은이 이미 가동된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발을 빼기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노벨상에 눈이 멀어 뼈까지 내주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트럼프는 "대북제재는 비핵화시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상회담 전후로 트럼프는 확실히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불과 몇 개월전 트럼프는 '분노와 화염'를 언급하고, 핵버튼 크기를 자랑했다. 군사행동시 일어날 한반도의 비극따위는 안중에 없어보였다. 그랬던 트럼프가 "6·12정상회담은 어려운 비핵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며 "(전쟁이 일어나면) 2000만명, 3000만명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제 세계 최강 미국의 군사력으로도 해결이 쉽지 않은 한반도의 복잡한 현실을 직시한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향후 인내심을 요할 비핵화 프로세스에선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정상회담 하루 전인 11일 저녁 싱가포르 시내 관광에 나섰다. 마리나베이샌즈 스카이파크에서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면서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절한 고립 속에 핵 하나만 달랑 남은 현재였을까, 경제 번영이라는 새로운 미래였을까. 그가 먼 이국땅에서 트럼프를 마주했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이미 미래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대포를 쏘아대는 해변의) 전망을 봐. 그 뒤로 멋진 콘도를 지을 수 있어." 공은 김정은에게로 넘어갔다. 멋진 콘도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모두를 승자로 만들 수 있는 그의 고통스러운 양보는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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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미국)=송정렬 특파원 song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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