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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선관위도 모른다"…범법자 양산하는 선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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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the L] [재판의 법칙-선거법 ①] 지방선거 선거사범 평균 5000명…"선관위가 규정 모르고 과태료 부과했다가 패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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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30일 앞둔 지난 14일 오전 서울지방우정청 집배원들이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서 '집배원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거 홍보단 발대식'을 진행하고 있다.서울시선관위는 지방선거일인 6월13일까지 집배원 이륜차 3000대에 선거일 및 사전투표 등을 안내하는 스티커, 깃발을 부착 운행해 동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지방선거 홍보를 실시한다. / 사진=김창현 기자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이 입후보 예정 선거구 주민들을 모아 선거공약 발굴을 위한 간담회를 열어도 되나요?"

"교육감 선거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이 평소 쓰는 명함에 학생과 찍은 사진을 게재해도 될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서면질의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들이다. 누가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예비 후보 측이나 일반 시민들이 올렸을 법한 질문들이지만, 사실은 각 시·도 선관위가 올린 것이다. 입후보 예정자나 선거권자가 문의한 내용에 대해 지방 선관위 차원에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중앙선관위로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이다.

지방 선관위의 수장은 지방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가 맡고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맡고 있다. 법을 해석하는 게 직업인 베테랑 판사들도 제대로 해석을 못해 다른 판사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물어본다는 얘기다.

비단 지방 선관위 뿐이 아니다. 중앙선관위 게시판에는 "선거 유세 차량에 구조물을 설치해 유세에 사용하는 게 불법이냐"는 경찰의 질의나 "국회의원 배우자가 경로당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의견을 청취하는 게 가능하냐"는 현역 국회의원의 질의 등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다.

선거법의 모호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중앙선관위가 공직선거법 279개 조항의 적용 기준을 정리한 '공직선거법규 적용사례집'은 그 분량이 2000페이지에 육박할 정도로 방대하다. 검찰이 발간한 '공직선거 벌칙 해설집'도 800페이지가 넘는다. 각 선거캠프는 물론 지방 선관위라면 이같은 자료를 구비하고 있지만 이를 동원해도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선거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이들이 일일이 유권해석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무법인 이래의 박은태 대표변호사는 "피고인의 처벌을 위해서는 법 조항이 명확해야 함에도 선거법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며 "선관위 홈페이지에 매년 유권해석이 범람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또 "수천 건에 달하는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범법자는 계속 나온다"며 "정작 선관위가 선거법 규정을 몰라 선거운동원들에게 수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였다가 소송에서 패소한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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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1995년 이후 2014년까지 6회에 걸친 지방선거에서 선거사범으로 입건된 이들의 수는 평균 5100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재판에 넘겨지는 이들의 수만 해도 3300명에 이르렀다.

사정기관에 의해 적발되는 경우보다 상대 후보 측의 고발에 따른 경우가 훨씬 많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때도 검찰에 입건된 4450명의 선거사범 중 검찰이 자체 인지한 건은 37%에 그친 반면 고발·고소로 인한 건수는 63%에 달했다.

선거법 위반 유형으로는 금품수수 등과 관련한 것이 34%로 가장 많았고,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 공표처럼 '흑색선전'으로 분류되는 유형이 18%로 뒤를 이었다. 정치권에선 이 두가지에 사전선거운동까지 합쳐 '선거법 위반 3종 세트'라고 부른다.

선거 법규의 모호함 때문에 작은 실수로 처벌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소백의 황정근 대표변호사는 "현역 의원을 지목해 '공약을 제대로 실천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 정치 신인을 '공약 30개 중 4개는 이행됐다'는 이유로 현역 의원이 고발해 유죄가 인정된 경우도 있다"며 "작은 말 실수가 형사 처벌 뿐 아니라 당선무효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또 "실제로 상대방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즉각 해명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답변을 질질 끌다가 실수하는 틈을 노려 고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쌍방간 공방이 이미 정리가 됐음에도 고발된 사안이 재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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