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감독 '만비키 가족'
일본영화 21년만에 황금종려상
한국영화 '버닝'은 비공식 2관왕
사회 비판 영화 수상 경향 엿보여
시상식 안팎 이어진 '미투'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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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들어올렸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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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에 돌아갔다. 그러나 폐막식이 열린 19일(현지시간) 저녁 뤼미에르 대극장을 압도한 건 이탈리아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였다. “나는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강간당했다. 영화제는 그의 사냥터였다.” 여우주연상 시상무대에 오른 아르젠토의 말이다. 와인스타인은 칸영화제를 포함한 여러 성범죄 혐의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세계 영화계 스타가 모인 객석에선 아낌없는 응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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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폐막식 무대에 오른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왼쪽). 오른쪽은 올해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영화감독 에바 두버네이.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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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부문 수상을 노렸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 한국배우유태오가 전설적인 로커 빅토르 최로 분한 러시아 영화 ‘레토’는 현지 평단의 극찬에도 본상 수상권엔 들지 못했다. 다만, ‘버닝’은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가 수여하는 상과 신점희 미술감독이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을 받아 비공식 2관왕에 올랐다. ‘레토’는 칸영화제 기간 열리는 ‘칸 사운드트랙 필름 뮤직 어워드 2018’상을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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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 한 장면. [사진 칸국제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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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가족’에 대한 시선도 달라진다. 60?70대에도 계속 가족영화를 찍고 싶다.” 고레에다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만비키 가족’은 좀도둑질로 얽힌 가난한 가족의 비극에 일본의 오늘을 투영했다. 본지와 인터뷰에서 감독은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일본사회에서 가족을 묶는 것은 혈연인가, 함께한 시간인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개막 때부터 여성 등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심사위원장 케이트 블란쳇은 “훌륭한 경쟁작이 많아 결정을 내리기가 고통스러웠지만, ‘만비키 가족’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고 말했다. 일본영화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건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 이후 21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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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대상은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에게 돌아갔다. 1997년 '정글피버' 이후 27년만에 칸 경쟁부문에 복귀해 수상까지 이뤄냈다.[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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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 등 올해 수상작엔 사회 비판적 성향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블랙클랜스맨’은 1970년대 한 흑인 경찰이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 ‘KKK’를 잠입 취재한 실화를 풍자적으로 다루며, 영화 말미에 지난해 버지니아 샬롯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혈소요사태 뉴스화면을 덧붙였다. 리 감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시 사태에 맞섰던 유색인종 및 이민 옹호단체를 싸잡아 비난한 데 대해 맹비난하기도 했다. 심사위원상은 레바논의 열악한 난민 현실을 그린 나딘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이 안았다. 영화는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 비전문 아역배우 자인 알 라피아의 빼어난 호연 등으로 공식 상영 당시 올해 경쟁부문에서 가장 긴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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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쟁부문에서 최장 기립박수를 끌어낸 '가버나움'의 나딘 라바키 감독(맨 왼쪽)이 실제 난민 출신 아역배우 자인 알 라피아(가운데)와 함께 심사위원상 수상 후 취재진 앞에 나섰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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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유로 이란 정부에 영화 연출을 금지당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사회파 로드무비 ‘쓰리 페이스’는 이탈리아 앨리스 로르와처 감독의 ‘라자로 펠리체’와 공동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파나히 감독의 수상은 딸인 솔자르 파나히가 대신했다. 감독상은 1950년대 냉전시기를 무대로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그린 폴란드 파벨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가 차지했다.
여우주연상은 카자흐스탄 영화 ‘아이카’(감독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의 사말 예슬야모바, 남우주연상은 이탈리아 영화 ‘도그맨’(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마르첼로 폰테가 가져갔다. 누벨바그 거장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은 실험영화 ‘이미지의 책’으로 특별 황금종려상에 호명됐다.
감독의 첫 연출작에 평생 한번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은 벨기에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에 돌아갔다. 성전환수술을 앞둔 소년이 발레학교에 들어가며 벌어지는 퀴어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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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 [사진 칸국제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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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또 다시 남성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대해 일각에선 71년간 이 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은 ‘여전히’ 제인 캠피온(1993년 ‘피아노’로 수상)이 유일하다는 비판도 들려왔다. 올해는 감독주간과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최고상도 각각 ‘클라이맥스’의 가스파 노에 감독, ‘보더’의 알리 아바시 감독 등 남성 감독들이 수상했다.
한편, 이날 아시아 아르젠토는 “오늘밤에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와있다. 본인들은 알 것”이라고 말했다. 하필 같은 시간 프랑스 유명감독 뤽 베송이 여배우 강간혐의로 고소당했다는 뉴스가 보도돼 충격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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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경쟁부문 본상은 불발된 대신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으로 비공식 2관왕에 올랐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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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은 본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폐막식에 앞서 세계 최대 영화평론가 및 영화 전문기자 조직이 수여하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에 호명됐다. 칸?베를린?베니스 등 유수 국제영화제의 주요 부문 우수작 각 한 편에 주는 상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한국영화가 수상한 건 처음이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라며 “여러분이 그 미스터리를 가슴으로 안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점희 미술감독도 2년 전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에 이어 벌칸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출을 맡은 키릴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푸틴 정부와 갈등으로 가택연금에 처하면서 영화제에 불참했던 유태오 주연 영화 ‘레토’는 본상은 불발됐지만, 대신 칸사운드트랙재단이 수여하는 영화음악상을 거머쥐었다.
칸(프랑스)=나원정 기자 na.won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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