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먹은 이 땅의 정치판은 / 강산이 7번씩이나 바뀌도록 / 나잇값 못하고 폐단만 쌓았으니 / 대한민국 1호 적폐다
신록 가득한 이 눈부신 시절에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과 북의 정상이 분단 70년의 벽을 허물며 통역 없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마당에 여당과 야당은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불통의 언어로 삿대질이다. 야당 원내대표의 단식과 그 앞에 쏟아지는 조롱에 상처만 남기는 독설까지, 눈과 귀를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놀고먹기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그 정도로 됐다. 차라리 ‘뚫어진 입’들 다무시고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
김기홍 논설위원 |
우리 정치는 왜 늘 이 모양인가.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국민통합, 화해, 화합을 다짐하며 파천황의 새 세상을 열 것처럼 해놓고 쳇바퀴 돌리듯 반목과 대립의 상쟁(相爭)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하루에도 열두번씩 서울 광화문 광장에 멍석 깔아 석고대죄시켜 땅바닥에 머리를 찧게 하고 싶다. 올해는 제헌 70년, 사람 나이로 치면 고희(古稀)다. 예로부터 70세 살기가 드문 일이라는 뜻이니 장수의 축복을 받아 마땅하겠으나 70살 먹은 이 땅의 정치판은 강산이 7번씩이나 바뀌도록 나잇값도 못하고 폐단만 쌓았다. 그만큼 욕을 먹었으면 정신 차릴 법도 한데 수십년 전 삼류정치의 구각(舊殼)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으니 국회가 ‘대한민국 1호 적폐’이고 ‘마지막 적폐’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4월 국회에 이어 5월 국회까지 공을 치고 있다. 직무유기, 무노동 무임금 비판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4월 임시국회를 빈손으로 끝내고도 국회의원 294명은 세비로 33억7806만원을 챙겼다. “일 안 하는 세비 버러지 국회”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탄식이 넘치고 세비 반납하고 국회 해산하고 조기 총선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빗발친다. 면목이 없었던지 빈말이라도 “반납하겠다”고 하는 의원 몇몇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 정도라면 어영부영 노는 국회의원은 없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도 있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은 “국회가 안 열려도 누군가는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고,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고, 행정부처와 관련된 정책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보고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국회 회의장에서 민생 좀 살펴달라. 한달 넘게 국회 팽개치고 하실 말씀은 아니다.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곡기를 끊는 최후의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막장 정치는 국민을 질리게 한다.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바로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단식행태를 비판했던 이정현 의원은 2년 뒤 여당 대표로서 단식투쟁을 했고 다시 1년 반 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단식에 나섰다. 지금의 특권도 부족해 ‘단식투쟁’마저 특권 목록에 추가하려는가. 목숨 걸 만큼의 비장한 결기와 각오라면 고공 지지율에 취한 여당 마음 하나 돌려놓지 못할 것도 없다.
추미애 대표를 보면 그 야당에 그 여당이다. 단식을 중단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향해 “깜도 안 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드러누웠다”고 조롱을 날렸다. 드루킹 특검을 찬성하는 과반의 여론도 졸지에 봉변을 당했다. 여당이 야당 시절 주장했던 특검은 깜이 됐던 모양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민의의 전당에서 단말마(斷末摩)의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국회의 숨통은 이미 끊어진 것이다. 그 책임은 여당에게 있다. 지지리 못난 야당이라도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여당 할 일인데도 외려 뿌리치기에 바쁘다. 국회 정상화에 가까스로 합의했으나 오뉴월 정치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천박함을 참을 수가 없다. 참으로 예의가 없다.
김기홍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