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아내 위해 밥상을 차린 남편의 부엌일기 ‘오늘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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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위해 당신이 요리를 해줬으면 좋겠어.”
아내의 부탁을 받은 남편은 묵묵히 부엌으로 들어섰다. 라면 끓이는 것 정도밖에 하지 못했던 남편은 어색하고 낯선 세계에서 한동안 주춤거렸다. 무엇보다 아내는 아팠다.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리에 대해 감이 전혀 안 잡히니까 고생했죠. 더욱이 대충대충하면 안되니까요.”
3년여의 암투병 끝에 떠나간
아내를 위한 간절함 묻어나
이달 초 에세이집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루페)를 펴낸 강창래 작가(59)를 만났다. 강 작가의 부인인 정혜인 알마 출판사 대표는 3년여 암투병 끝에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에세이집은 강 작가가 부인을 위해 해준 요리에 관한 레시피와 후일담을 기록한 것이다.
강 작가를 만난 날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편하게 하세요.” 궂은 날씨 때문에 인터뷰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강 작가가 먼저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에세이집을 보면 그는 콩나물무침부터 탕수육까지 다양한 요리를 해낸다. 그것도 뚝딱뚝딱. “좋은 음식은 재료를 잘 이해하고 다룬 음식”이라고 생각한 강 작가는 먼저 공부를 했다. <음식과 요리>라는 10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비롯해 여러 음식 관련 책을 읽었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다음엔 한 음식에 관해 유튜브나 TV 등에서 소개된 레시피 10여개를 연구했다. 그랬더니 핵심이 보였단다. 평소 “게으른 성격”이라는 강 작가가 요리에 이렇게 열심일 수 있었던 건 무염·저염식을 해야 하는 아내의 상황 때문이었다. “요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사람은 제가 해주는 것만 먹었어요. 즐거웠죠. 우리가 35년을 같이 살았는데, 안사람은 마지막 3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했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함께한 세월이 늘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하는 강 작가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면서 매달렸던 생각이 ‘콜래트럴 뷰티’(collateral beauty·부수적인 아름다움)라는 말이라고 했다.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 작가는 말했다.
출중한 출판기획자로, 수십년 인문학 강의와 저술을 해온 강 작가인데도 레시피를 적는 행위가 책 출간으로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무렵부터 약 1년간 페이스북에 레시피를 적었다. 요리 가짓수만 60여가지. “글쓰기를 가르칠 때 ‘일어난 일을 쓰되, 일어난 일을 재구성하거나 의미부여를 하면 좋은 글이 안된다’라고 말해요. 사람의 행위는 모든 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사실을 쓰고 나면 저절로 의미가 생겨나죠. 제 글이 그런 사례가 될 줄 생각 못했네요.”
24시간 돌봐야 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상황은 쉬이 말로 전할 수 없다. 에세이집에는 고통의 순간을 묘사한 건 몇 부분 되지 않는다. “먹을 수만 있다면” 하고 가정하면서, 요리를 해야 하기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인터뷰 당일 저녁, 강 작가는 도수치료 일정이 있었다. “최근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도수치료사가 제게 온몸이 쪼그라들었다고 말하더라고요. 매일 긴장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그랬나봐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레시피를 메모한 건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메모하는 그 순간들은 스스로를 위한 서비스와 같은 것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강 작가는 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 출판사 대표와 일러스트레이터를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 책의 일러스트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박현수 작가(아메바피쉬)의 부인 김미희 작가가 그렸다. 박 작가는 2015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김 작가 역시 그림에 슬픔을 직관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강 작가는 김 작가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사람은 적당히 하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인간적으로 존경했죠. 물론 그런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웃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걸 너무나 좋아했어요.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런 서비스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뭔가 해주려고 했죠. 근데 최근에 저도 남에게 뭔가 해주는 걸 참 좋아한다는 걸 느껴요. 지인들은 안사람이 저를 훈련시키고 떠났다고들 해요. 안사람에게 인간적인 빚이 크죠.”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기쁨의 순간 발견할 수 있어
과거와 비슷한 삶 속의 낯섦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인데
그걸 좀 일찍 알게 됐을 뿐”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내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강 작가는 “삶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렇게 여유가 있다는 것, 집이 평화로워졌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슬픈 책을 썼다’고 말해주는 것…. 다 낯섭니다. 어느 책에 보니 우리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인데, 누군가는 그걸 좀 일찍 알게 됐을 뿐이죠. 지난 3년여를 살아간 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제게도 위로가 됩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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