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오만석 / “꿈은 이루지 못해도 꾸는 게 중요 / 뮤지컬 영화 제작 도전해보고 싶어 / 19년차 배우지만 연기 진정성 고민”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제게 일침을 놓는 작품이에요. 저도 기성세대니까, 현실에 안주하거나 불편한 논쟁은 피해가려는 면이 있어요. 그런 모습에 경각심을 일깨우죠.”
배우 오만석(사진)은 요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6월 3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주연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 최근 블루스퀘어 근처 카페에서 만난 오만석은 “이번 무대하면서 제가 좀 변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터뷰에서 ‘전 꿈이 없어요’라고 했어요. 이미 제 능력보다 많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것과 꿈은 별개 같아요. 꿈은 꾸라고 만든 거니까. 이 뮤지컬에서 ‘이룰 수 없어도 팔을 뻗어본다’고 노래하잖아요. 행위 자체가 중요하지, 이룬다 못 이룬다는 다음 문제인 거죠.”
‘맨 오브 라만차’는 울림의 깊이가 남다른 작품이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격조 있게 전한다. 원작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뮤지컬에서 늙고 볼품없는 돈키호테는 ‘그 꿈 이룰 수 없어도/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사랑을 믿고 따르리라/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힘껏 팔을 뻗으리라’고 노래한다.
돈키호테를 연기한 뒤로 오만석도 그만의 ‘잡을 수 없는 별’을 떠올리고 있다. 그는 “전부터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뮤지컬 영화가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게다가 그는 영화제작자나 감독도 아니다. 말하기 멋쩍었던 꿈을 이제 조심스레 내보이게 된 그는 “10년 안에 아주 잘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가 2, 3편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직접 영화화하고 싶은 창작 뮤지컬도 점찍어놨다. 뮤지컬 ‘즐거운 인생’(2008)이다. 연극 ‘이(爾)’의 김태웅 작가가 쓴 희곡을 그가 직접 각색·연출했던 작품이다.
대중에는 덜 알려졌지만, 오만석은 연출에도 관심이 많다. 그간 ‘즐거운 인생’뿐 아니라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과 ‘톡식 히어로’, 연극 ‘3일간의 비’ ‘트루 웨스트’ 등을 연출했다. 다재다능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여기저기 찔러만 보고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문제”라고 했다. ‘연기만 하면 더 편하지 않겠느냐’ 묻자 “제가 엄청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서, 연기만 쭉 하면 더 안 풀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자기 연기에 너무 도취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게 있어요. ‘연기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해지는 순간, 나는 끝이다’라고요. 제가 공 들여 요리해도, 입맛에 안 맞거나 싫어하는 재료가 있으면 상대방에게 맛 없는 음식이잖아요.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이유를 못 받아들이면 전 안 팔리는 음식을 내놓는 주인과 마찬가지인 거죠. 스스로에게 자부심은 갖되, 비판은 냉정하게 받아들이려 해요.”
19년차 배우인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해 고민 중이다. 이번 공연에서 그의 화두는 ‘세월 속에 퇴적된 삶의 무게를 어떻게 전할까’이다. 극 중 세르반테스는 철없는 공상가가 아니라 온갖 풍파에 시달리고도 여전히 꿈을 얘기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만석은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두 번이나 총을 맞은 데다 고향에 가던 중 배가 난파돼 알제리에 노예로 잡혀갔다”며 “제가 대사를 뱉었을 때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잘 드러났으면 한다”고 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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