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즈음이었던가.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운전하는 엄마라서 좋다." '운전’이란 능력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일치감치 알아버린 다섯 살.
아이가 태어나면, 순식간에 이동 약자가 되고 만다(아이와 엄마 모두!).
생리 현상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심지어 걷지도 못 하는 아이와 함께 이동하려면 굉장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이동이란 최소한의 활동을 위해 의지와 노력을 기해야만 한다니!). 일상적으로 장애물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보도블럭, 계단과 같은 물리적 제약은 물론이거니와,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예측하기 힘든 아이의 생체 리듬으로 인해 난감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영유아기를 지나면서 어려움의 강도가 점점 낮아지긴 해도, 완전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이동 환경 개선을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해 오신 장애인 운동가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동시에 부끄러워진다. (대중)교통 시스템에서 소외 돼 온 이들의 심정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사실상 무관심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이어진다. 대체로 육아기는 한시적이기에, 그 시기가 지나면 스스로의 노력이 없어도 장애물이 사라진다. 여전히 존재하는 장애물이지만 더 이상 장애물로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동과 함께 이동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긴 해도, 대안이 전혀 없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이를테면, 보조 양육자를 찾는 일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보조 양육자가 있을 경우 아이를 맡기고 나간다거나, 자가용을 이용한다거나 등) 양육자들의 상황과 장애인들의 이동 환경 제약 자체를 같은 수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참여만이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이동약자가 된다. 아이와 양육자 모두. 유모차를 끄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성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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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순간 이동약자가 된다. 아이와 양육자 모두. 유모차를 끄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성실◇ 엄마에게 운전 기술과 자가용이 필요한 이유
'정치하는엄마’인 내게 임신·출산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종종 묻는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게 무엇이냐고. 그럴 때마다 주저 없이 답한다. '운전!’ 그리고 여건이 닿는다면 '자가용’을 구비할 것을 권한다. 차종과 연식은 중요치 않다. 여튼 아이와 함께 전용할 수 있는 이동 기구가 필요할 뿐.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및 친환경 이동 수단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엄마가 되기 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일이 운전면허를 따고 자가용을 구비하는 일이라니. 무책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을 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진심이니까.
한두 달 전이었다. 봄이 되자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조른다. 겨울 내 이용하지 않았더니 바퀴 바람이 다 빠져 있었다. 자동차에 실어지지 않는 자전거. 두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를 고치러 갈 수 없어서 주말만 기다렸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주말에도 자전거를 고치지 못했다. 간만에 미세먼지가 없던 날, 날도 무지하게 화창했다. 이러다 이번 봄에도 자전거 한 번 못 타보면 어쩌나 싶어 아이 둘을 데리고 자전거를 고치러 나섰다. 버스로 세 정거장, 언덕을 넘어가야 정비소에 도착한다. 아장 아장 걷는 둘째를 데리고 바람 빠진 자전거와 큰 아이를 챙겨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택시를 잡는다. 태워주지 않는다. 심지어 세 정거장 밖에 안 간다니. 결국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엔 여러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했다.
관건은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시나 택시가 잡히지 않아 간신히 버스에 올랐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를 본 기사 아저씨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없다고 화를 내셨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어 버스에 올랐다. 마침 자리가 있어 큰 아이를 먼저 태우고, 나는 혹시라도 자전거가 굴러가 다른 승객을 다치게 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둘째 아이와 자전거, 그리고 버스 손잡이를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저씨가 쉼 없이 내 뒷통수에 대고 비난(?)을 하셨다. 너무 정신이 없어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튀어 나온 단어들은 '젊은 엄마가 어쩌고 저쩌고’, '저런 사람들이 있어 어쩌고 저쩌고’, '이기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뭐 그런 말이었다. 아이들의 안위를 확인했다. 큰 아이도 내가 걱정되는지 자꾸만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괜찮아?" 그 와중에도 아이에게 "대중교통에선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이른 나. 그런 후 아저씨에게 본격적으로 되물었다.
"아저씨, 휠체어나 유모차는 못 타는 건가요?", "택시도 태워주지 않고, 아이들 데리고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버스를 탄 건데요. 저는 이동 약자가 아닌가요?", "지하철도 지나가지 않는 이 거리를 그럼 어떻게 이동해야 하죠?", "요즘 사이클 들고 대중교통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유아용 자전거 들고 탄 게 그렇게 죄가 되나요?" 아저씨의 대답이 점점 작아졌다. 이내 내려야만 하는 정거장에 다다랐다. 뒷자석에 앉아 계시던 성인 남자 승객이 급히 달려나오시더니 큰 아이의 손을 잡아내려 주셨고, 사양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직접 하차 시켜 주셨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탑승하셨다. 고쳐 온 자전거를 보고 신난 큰 아이와, 형의 자전거를 타고 싶어 오매불망 기회를 노리는 둘째를 데리고 공터로 갔다. 아이에게 물었다.
"후야. 아까 무섭지 않았어?"
"응. 조금 무서웠어. 그런데 아저씨가 왜 화를 냈어?"
"자전거 가지고 탔다고. 근데 본래 가지고 탈 수 있거든. 그래서 엄마가 아저씨에게 왜 화를 내시냐고 물어본거야."
"엄마 멋지다."
혹여 아이가 겁먹거나 또는 기사 아저씨와 싸우는(따져 묻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싶어 다독이려던 건데, 아이가 그런 나를 보며 "엄마 멋지다"고 말했다.
다음 날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 한 후 "아동용 자전거를 가지고 버스에 탑승할 수 없나요"라고 물었다. 담당자 분이 정중히 사과하시며 "당연히 탈 수 있어요. 그런 경우라면 내려서라도 도와 드려야지요. 어느 시간대 몇 번 버스인지 알려 주시면 내부 교육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버스를 특정해 답하진 않았다. 대신 덧붙였다. "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 기사님에게 징계 같은 걸 드릴 수 있나 여쭌건 아니고요. 많은 기사님들이 인지하실 수 있도록 안내와 교육 부탁드립니다."
이후 더 찾아보니 지하철·버스의 경우, 노선마다 지하철을 휴대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12월 29일 발표된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대통령령 제 28528호]」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장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군계획, 「도시교통정비촉진법」에 따른 도시교통 정비 기본계획 등을 수립할 때 자전거도로의 조성, 자전거이용시설과 대중교통과의 연계 등에 관한 사항을 검토·반영"하여야 한다. '내일연구소 서울’이 발표한 '2017년 10대 뉴스’에서 공유정책 인지도 및 만족도 1위로 꼽힌 정책은 '공공자전거 따릉이’였다. '경기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 된 파주시의 경우, 파주시만의 공유자전거 서비스 도입 특성화 방안을 도입하겠다며 "시민에게 저렴한 근거리 교통수단을 제공해 대중교통 연계와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라고 밝혔다. 관광도시 제주특별시 역시, '제주도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 수립용역’ 최종 보고회를 통해 단기 사업(2018~2019년)의 일환으로, 대중교통 연계기반 구축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대중교통 연계' 필요성을 논하며 시행하고 있다는데, 정작 나는 승차 거부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탔다가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다. 자주 그래왔듯, 정부·지자체가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은, 엄마로서 맞부딪히는 일상에서 아득히도 멀리 있다. 굳이 자전거가 아니어도, 다자녀가 아니어도, 울음이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며 겪는 일상 속 장애는 부지기수다. 이 모든 불협화음이야말로, 정치하는 엄마인 내가(대중교통 활성화를 외쳐도 모자랄 판국에) "아이를 낳으려면 면허 먼저 따라"고 실제적인 조언을 하게 되는 이유다.
아이들에게도, 아이와 함께하는 양육자에게도, 이동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조성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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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도, 아이와 함께하는 양육자에게도, 이동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조성실마지막으로 짤막하게 덧붙이는 엄마 운전자를 위한 팁(tip) 하나. "썬팅을 하라." 운전 14년차인 나는 면허 초기 두어번 친정 부모님의 차를 긁었던 것을 제외하고 무사고, 무스크래치 운전을 유지해왔다. 그런데도 어딜 가서든 '엄마가 애들 데리고 운전하느라 애쓴다’고, '차 긁어서 아이 아빠가 화를 내진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성 운전자에 대한 편견에 덧붙여 엄마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라 쓰고 이 역시 편견이라 읽는다)이 반영된 결과다. 이 뿐 아니다. 주차를 해도, 깜빡이를 넣어도, 급정거를 해도, 어떤 상황에서든 작은 실수라도 할라치면, 여성 운전자, 그것도 카시트가 기본 탑재 된 엄마 운전자를 향한 편견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걸 경험한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남편은 차를 구매한 지 얼마 안 돼 차창을 한 톤 더 어둡게 썬팅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내인 내가 여자 운전자라고 무시 당할까봐. 애들과 (거의) 늘 함께인 내가 만나게 될 혹시 모를 위험과 불쾌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엄마가 되기 위한 최우선 준비가 '운전’이 되지 않으려면, 필연이고도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 이동 약자를 고려한 보행 환경 및 대중교통 체계 개편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동반한 차량과 이용자가 공공기관 및 여타의 공간들을 작심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시스템과 정책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이다. 여성, 그리고 엄마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편견은, 이동 약자로 겪게 되는 물리적 불편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에서다. 대표적으로 맘충 논란을 들 수 있겠다.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는 맘충 논란만큼 법·제도적 해결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드물다. 어떤 정치인도, 정책 설계자도 맘충에 대해, 노키즈존 이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공적 공간에선 음소거된 채, 사적 공간을 중심으로 빠르게 고정관념화 되고 있다. 심지어 당사자들조차, '나도 엄마지만 요즘 엄마들 중 그런 사람이 많더라’ 혹은 '그런 사람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어디서도 "학술적이고 정책적으로 이 주제를 조명해보자"거나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모아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얘기해보려 한다. 여기까지 다소 장황하게 적어보았다. 운전-임신-출산-이동약자-엄마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 글을 읽다 문득 '엄마정치’,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지신 분이 계시다면, 공식 홈페이지(political-mamas.org)와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political.mamas)를 찾아주시길 기대한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정치한다."
*칼럼니스트 조성실은,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사회를 꿈꾸는 전업활동가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라고 믿는 필자는, 아이 키우는 일의 중요성과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엄마 개인을 소진해야만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때론 엄마라서 벅차고, 때론 엄마라서 보람찬 양가 감정들. 이 모든 경험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하나마을 공동육아 교사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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