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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北, 완전한 비핵화 불가능···결국 리비아 모델 따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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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아·태 전문가 휴 화이트 교수
중앙일보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ANU) 교수. [A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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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으로 이뤄진 북·중 회담(3월)부터 남북정상회담(4월), 그리고 또 한번의 다롄 북·중 회담(지난 1~2일)까지…. 동북아 시계의 초침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가운데, 이제 세계의 관심은 ‘세기의 회동’인 북·미정상회담에 쏠려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로켓맨” “미치광이”라며 위협적 발언을 주고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 달 후(6월 12일)면 싱가포르 회담장에서 마주앉아 ‘한반도 비핵화’를 두고 역사적인 담판을 짓는다.

중앙일보는 권위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 전문가인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ANU) 교수(전략학)와 9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도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일본 등) 동맹국 대신 자국의 안보를 중시할 것”이라며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는 가정 아래 북한이 추후라도 위협적 자세로 회귀한다면 한국은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남북, 북·미 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결정적 계기는.

“다양한 계기가 있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제재 압박 및 군사 공격 경고 말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김정은이 스스로 ‘유리한 협상 위치에 있다’는 셈법이 있었던 것이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상당한 핵 능력을 갖춘 덕분이다. 또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에 맞는 딜(deal)에 나서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물론 회담을 나서는 이유는 양측이 매우 다를테지만 말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주한미군 문제는 극히 복잡하다(extremely complex). 예컨대 북한으로 하여금 핵 능력을 줄이도록 하는데 주한미군의 상당 수준 감축이 요구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휴전 협정을 대체할 평화 협정이 한국 전쟁의 종전으로 이어진다면 주한미군 배치의 전략적 명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는 두 가지 이유에서 리스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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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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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첫째, 만약에라도 북한이 (휴전 혹은 평화 협정을) 깨고 기존의 위협적 자세로 회귀한다면 주한미군이 빠져나간 한국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일 것이다. 둘째, 주한미군의 상당 수준 감축으로 인해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중도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가 작동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론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기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대신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수없는 비핵화)를 꺼내들었다. 용어 변화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기존 북핵 해결책(CVID)을 묘사하는데 있어 좀 더 적절한 용어를 쓰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국은 협상 개시와 동시에 북한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앞서 11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PVID의 의미는) 과거처럼 여러 단계로 쪼개 비핵화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과거에 처했던 것과 똑같은 지점으로 귀결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취할 행동”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북한은 미 대륙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에 대해 강력한 제약을 받겠다고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나라들(한국·일본)이 타깃인 중거리 미사일에 대해선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 안 좋은 결과다. 종합하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용어(PVID) 사용은 ‘말 장난(slip of the tongue)’일 것이며, 미국은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부분적인 비핵화’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김정은이 이것 밖에 제공할 수 없다고 한다면 말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단 얘긴가.

“김정은이 그 어떤 현실적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와 그의 전임자(김일성·김정일)들은 무기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고, 이제 이 무기들을 포기하기엔 김정은의 체제 유지와 안보에 너무나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국제사회에 이를 공개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김정은이 추후 핵 개발과 관련해 일부 제약(some limits)을 받아들이겠다는 상징적인 의사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한국으로부터 상당 수준의 보상을 대가로 말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자체는 김정은이 자신의 핵 능력을 포기한다는데 있어 그 어떤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북한에 리비아 모델이 적용 가능한가. 최근 문 대통령은 경제적 보상이 없는 남아공 모델을 대안으로 언급했다.

“현재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할 당시의 리비아 혹은 남아공에 비해 훨씬 더 나은 협상 위치에 있다. 북한은 두 국가에 비해 핵 능력이 훨씬 발전한 상태다. 게다가 핵 능력의 전략적 필요성 역시 이들에 비해 훨씬 크다. 하지만 북한이 리비아 모델 수용에 동의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나마 있다고 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부분적인 제약을 받아들일 것이란 얘기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다면.

“(이번 회담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마음 먹었다면 비웠으면 한다. 한반도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낼 만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면 아무런 합의를 맺지 않은 채로 회담장을 걸어 나오는 게 낫겠다. 어떤 성과가 나오든 트럼프는 ‘북·미 회담은 성공적이었다’고 선언하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가장 최선의 성과는 북한이 CVID에 합의해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제공받고, 정상 국가(normal country)로 탈바꿈하며, 이웃 국가와 평화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현실적이다. 상식선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best reasonably likely) 성과는 북한이 핵 능력에 대해 (유지한 채로) 확실한 검증만 받아들이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한반도 긴장을 줄이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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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왼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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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협상 이후에도 북한은 중국의 완충 역할을 할까.

“그렇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미국의 힘이 약해짐에 따라 (북한의) 완충 역할은 점차 덜 중요해질 것이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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