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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매경춘추] 시간의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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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한과 북한의 시간을 통일해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던 평양 표준시를 남한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해서 떠들썩했다. 이참에 오히려 남한이 북한 표준시에 맞추자고 하는 청원도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빠른 통신이 불가능하고 오랫동안 정확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시계가 없었던 시절에는 국가 전체에 다 같이 적용되는 표준시를 정하기 어려웠다. 해시계로 시간을 정했던 과거에는 도시나 지역별로 서로 시간이 달랐다. 예컨대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을 12시로 정하면 경도가 다른 지역에서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광범위한 지역에 적용되는 시간의 표준이 필요하게 된 것은 기차와 같이 빠른 교통수단이 나오고 전보나 전화가 도입된 이후 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표준시가 왜 일본을 지나는 경도선에 의해 정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준시는 대부분 15도의 배수가 되는 경도를 기준으로 설정한다. 우리나라는 이를 만족시켜주는 가장 가까운 동경 120도나 135도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아마도 중국보다는 일본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135도에 맞추는 것이 편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15도의 배수가 되는 경도선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는 동경 82.5도를 지나는 단일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와 3시간 30분 차이가 난다.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경도의 기준인 본초자오선으로 정한 것은 1884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렸던 국제자오선회의에서였다. 이러한 결정 배경에 얼마나 복잡한 정치논리가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프랑스가 상당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음은 당시 회의록을 읽어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마도 트라팔가르 해전과 워털루 전투에서의 승리 이후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잡았던 영국의 힘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프랑스는 20세기 초까지도 수도인 파리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사용했으나 불편함 때문에 1919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정해지는 표준시 체계를 따르게 되었다. 결국 표준시간을 정하는 것은 국가의 자주권에 해당되기도 하지만 편리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형목 천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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