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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필동정담] 필리핀 가사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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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이들이 어릴 때 입주 도우미와 함께 살았다. 한국인 도우미는 대부분 입주를 원하지 않고 비용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분들은 주로 '조선족 이모님'이었다. 조선족 도우미들도 자주 월급을 올려줘야 해 고민이 컸는데 주변에서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추천했다. 젊고 영어가 돼 애들 영어공부도 시킬 수 있는 데다 비용이 조선족(150만~200만원)의 60~70% 선이라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필리핀 도우미를 구하겠다는 나의 꿈은 좌절됐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F-4 비자)나 결혼 이민자(F-6)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들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가정집에서 일하는 필리핀 도우미들 중 상당수는 관광비자나 단기비자로 들어와 불법으로 눌러앉은 경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고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산업연수를 받는 것처럼 데려와서 집안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조 회장 일가가 해외여행을 갈 때 이들을 데려갔고, 경비를 회사에서 부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씨 일가뿐 아니라 집안 얘기가 밖에 퍼져나가는 것을 꺼리는 상류층들이 언어가 안 통하는 필리핀 도우미를 불법고용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진 일가의 불법고용 문제는 철저히 밝혀야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활용은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해법을 고민할 때마다 만지작거리는 카드다. 홍콩은 1970년대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합법화해 저출산과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했다. 내국인과 외국인 근로자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월 60만~70만원이면 도우미를 쓸 수 있다. 홍콩에 여행 갔을 때 도심에 젊은 동남아 여성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봤는데 현지인 얘기로는 일요일 휴가를 받은 필리핀 도우미들이라고 했다. 높은 육아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워킹맘을 고려하면 우리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문호개방을 고려할 만한데 정부는 내국인 여성 일자리 위협, 불륜 등을 이유로 도입을 미루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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