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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IT강국이라던 한국, 스타트업 성과 동남아 국가에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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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에서는 '희생제(IdulAdha)' 시기에 독특한 풍속이 있다. 부자들이 이슬람 사원에 희생양(Kurban)을 기부하면 서민들이 그 고기를 얻어간다.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업체 '토코피디아'는 희생양을 사원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부자들이 지저분한 양우리를 찾아가기를 꺼린다는 점에 착안했다. 자카르타 시내 위생과 교통환경 개선 효과까지 가져온 이 서비스는 히트상품이 됐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쇼핑족을 파고든 토코피디아는 2009년 설립 후 6년 만에 거래액이 1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했다. 2014년엔 소프트뱅크 등이 인도네시아 기업 역사상 최대인 1억 달러(약 1067억원)를 이 회사에 투자했다.

#태국의 핀테크 기업 오미세는 2015년 '오미세고'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이 ICO(암호화폐 공개)에 무려 2500만 달러(약 267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태국 재무성의 '현금 없는 결제' 정책과 ‘Unbank the Banked(은행 중심에서 벗어나자)'를 기치로 내 건 오미세의 핀테크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다. 이더리움 기반으로 범용성과 결제 편의성을 확보한 오미세고는 현재 태국 내 맥도날드·버거킹과 커피숍 등에서 결제 수단으로 쓸 수 있고, 항공권을 사거나 송금할 수도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 증가율, 동남아가 한국 25배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동남아 스타트업들이 투자 유치와 성과에서 약진하고 있다. 반면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한국의 기업들은 동남아 기업들에도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가 15일 내놓은 ‘아세안 4개국 TIMS 스타트업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는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TIMS는 아세안 주요 4개국인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뜻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TIMS 국가에서 최근 10년간 연평균 벤처캐피털(VC) 투자 증가율은 54%에 달했다. 성장 조짐이 보이는 스타트업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기간 한국의 VC 투자 증가율은 2.2%에 그쳤다. TIMS의 투자 증가율이 한국의 25배에 달했다. 아세안 각국은 스타트업 시장에서 각자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협 관계자는 "태국은 저렴한 창업비용, 인도네시아는 스마트폰 사용인구 9000만명이라는 거대 시장, 말레이시아는 효율적인 IT 인프라와 고급 인력, 싱가포르는 글로벌 핀테크 및 블록체인 허브화가 돋보였다"고 설명했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의 탄생을 비교하면 이 차이는 두드러진다. 오미세고·토코피디아 외에도 동남아시아에서 우버를 넘어선 싱가포르 차량공유 업체 그랩, 오토바이 배달로 성공한 인도네시아의 고젝 등이 많게는 2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금 1000억원 이상 유치한 기업, 국내엔 없어
반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중에는 1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한 기업이 없었다.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내 기업은 숙박 애플리케이션 업체 '야놀자'로 2회에 걸쳐 800억원이 들어왔다. 네이버가 투자한 우아한형제들도 총 유치금액은 350억원에 그쳤다. 차량 공유 업체 풀러스는 22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으나, 영업시간 확대가 논란을 빚으면서 사업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보고서는 IT 강국이던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발전 속도가 더뎌졌다고 지적한다. 한국 기업의 원천 기술력은 높지만, 문화적·지리적 폐쇄성과 불필요한 규제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맥킨지 한국사무소 김수호 파트너는 "최근 1년간 누적 투자액 기준으로 세계 상위 100대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면 규제에 걸려 43곳만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벤처 발전 더뎌"
보고서는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블록체인 산업화 ▶글로벌화 및 열린 정책(Openness) ▶규제 완화 ▶투자 유치 강화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블록체인산업 진흥기본법을 제정할 것과 창업투자회사의 해외 투자요건 완화, 규제정책 실명제, 신성장 스타트업에 대한 차등 의결권 제도 도입 등을 고려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무협 안근배 무역정책지원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을 단순히 신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으로 접근하면 벤처 생태계 강화라는 근본적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해지기 쉽다"며 "벤처 정책과 재투자 문화 등을 글로벌 수준으로 바꾸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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