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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무비클릭] 레슬러 | 그냥 믿고 보는 유해진표 가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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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드라마, 코미디/ 김대웅 감독/ 110분/ 15세 관람가/ 5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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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어느새 유해진은 한국 영화의 당당한 주연급 배우가 됐다. 십여 년 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왕의 남자’에서 육칠팔 형제 중 ‘육갑’이나 ‘공공의 적’에서 만년 범죄자 ‘용만’ 역을 맡던 대표적인 조연배우 유해진이 이제 함께 영화를 찍었던 주연들을 제치고 단독 주연으로 자리 잡았다. 연기력이나 이미지야 워낙 확고했지만 주연배우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화 ‘럭키’와 ‘공조’의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 영화계가 유해진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역시 코미디다. ‘레슬러’ 또한 유해진의 흥행 요소를 결합해 만든 ‘유해진표 가족 코미디 영화’다.

‘레슬러’는 아들밖에 모르는 아들바보 아빠의 끝없는 아들 사랑 이야기이자 성장담이다. 전직 국가대표였던 아버지 강귀보(유해진 분)는 아내가 세상을 일찍 떠나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인생 전부를 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아들 성웅(김민재 분)은 레슬링이 좋다 싫다 말할 틈도 없이 아버지의 기대와 종용에 떠밀리는 신세다. 타고난 재능도 있고 아버지의 관심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아버지가 이제 꽤 부담스럽고 좀 창피하기도 하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여자 문제’로 결국 폭발하고 만다. 사실 여자 문제는 일종의 핑계다. 언젠가 한 번쯤 터져야 할 문제의 방아쇠로 ‘여자’가 결부됐을 뿐. 이런 여자 문제는 영화의 ‘웃음’을 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소 엉뚱한 상대가 귀보를 사랑하고 그에게 저돌적인 애정공세를 하는 과정 자체가 웃음을 준다.

예상하다시피 아버지와 아들 간 갈등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윤리로 녹아 없어지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잘 살리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뻔한 이미지만 내세웠다는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유해진이기 때문에 훨씬 더 다정하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5월 가정의 달이면 극장에 늘상 걸리고는 하던 뻔하고 진부한 가족 서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를 빚어냈다.

영화 ‘레슬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면모는 바로 아들 역을 맡은 배우 김민재다. 레슬링 선수라는 조금은 특별한 신체적 능력을 무리 없이 소화할 뿐 아니라 아들의 저항심이나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마음을 여는 입체적 심리 변화를 몰입감 있게 보여준다. 스크린에서는 아직 낯선 여배우 이성경의 씩씩하고 풋풋한 연기도 흥미롭고 4차원 여성의 역할을 감칠맛 나게 소화한 황우슬혜 역시 등장 분량 이상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과속스캔들’이나 ‘수상한 그녀’ 같은 가족 휴먼 코미디는 한국 영화가 가진 강점이다. 부자, 모녀 심지어 3대가 얽혀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야기는 한국 영화만이 갖고 있는 매우 독특한 서사다. 뻔하지만 거듭해서 제작된다는 것은 한국 관객들이 이런 가족 휴먼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과 사랑, 희생과 재결합 같은 주제만으로 더 이상 가족 휴먼 코미디의 매력을 살리기 쉽지 않다. 진부한 소재를 진부한 방식으로 재활용하는 게 아쉽다는 뜻이다. 너무도 안전한 요소들만 남아 있는 영화에는 강렬한 매력을 찾기 어렵다. 사랑받는 이야기라고 질리지 않는 법은 없다.

매경이코노미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8호 (2018.05.16~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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