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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명품에 묻다]③가격 인상 '꼼수'vs'환영'vs'무관심'…'엇갈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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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제일 비싸…호갱론" "비쌀수록 명품에 대한 열망 커진다"

한국인 '과시형 소비' 특성…최고가에도 아낌없이 투자

뉴스1

프랑스 파리 몽태뉴가의 샤넬 매장 간판.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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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가격을 또 올렸어?" "중고 가격 올라갈 거니까 오히려 좋아" "난 어짜피 안 살거니까 올리든 내리든 관심없어"

최근 샤넬이 혼수철을 앞두고 가격을 기습 인상한데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렸다. 샤넬이 최근 1년 사이 5번째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한국 소비자를 '호갱(호구 고객)' 취급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미 사넬 제품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가격 인상을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국 소비자들이 '명품'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 소비자의 특성상 명품 등 사치재는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고 입을 모았다. 명품 가격 인상을 두고 소비자의 시선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품질 개선없는 가격인상 부당" "중고가 회수 가능해 기분 좋아"

15일 업계에 따르면 샤넬코리아는 이날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11% 인상한다. 루비비통도 지난해 11월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2차례나 가격을 올렸다.

에르메스, 구찌, 크리스챤디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모두 최근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국 호갱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항간에는 한국에서 명품 가격이 제일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을 접한 소비자 정 모 씨(27·여)는 "제품 품질이 더 나아졌다던가 개선된 디자인의 제품을 쏟아내는 것도 아니면서 가격만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 성수기를 앞두고 단행된 가격인상은 가족 간의 갈등을 불러오기도 했다. 다음 달 결혼 예정인 김 모 씨(29·여)는 "혼수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각각 루이비통과 샤넬 가방을 요구했는데 얼마 전 루이비통과 샤넬의 가격이 올랐다고 하니 시댁에서는 왜 이들 브랜드를 콕 집어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기분이 상했다"고 전했다.

반대로 가격 인상을 반기는 소비자도 있었다. 2년 전 구찌 가방을 구입했다는 김 모 씨(27·여)는 "가격이 오르면 떨어진 것보다는 당연히 기분이 좋다"며 "일종의 진입장벽이 높아졌기 때문에 희소성이 높아질테고 되팔았을 때 중고가격도 어느 정도 보전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급격하고 잦은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샤테크'(샤넬+재태크)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지속적인 명품 가격 인상으로 샤넬 등 명품을 구입한 후 충분히 쓰고 되팔아도 구입 가격을 회수할 수 있거나 오히려 더 비싸게도 팔 수 있게 되면서 샤테크 효과가 톡톡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은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지금이 사는 것이 가장 싸게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며 "정가 가격이 계속 매년 오르니 '샤테크'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한국인 과시형 소비에 '베블런 효과'

샤테크 등 시장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이 반발하는데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계속 인상하는 이유는 '비쌀수록 잘 팔리기 때문'이다. 명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발생하는 데 과시형 소비를 하는 한국 소비자에게서는 그런 현상이 짙게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서 가장 고가의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보여지는 것'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이에 아낌없이 투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는 "명품 업체들이 우리나라의 과시형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가격 인상)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는 "실제로 일본에서는 가격을 떨어뜨렸더니 오히려 명품 판매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베블런 효과 개념에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비하는 제품은 가격이 비쌀수록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거침없이 가격을 올리는 것도 가격이 오른 만큼 사람들의 열망이 커지는 심리 때문"이라면서 "명품은 그걸 구입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격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의 구매 행동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의 만족감에 집중하는 등 변화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요즘은 명품로고가 크게 박혀있으면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적인 만족감을 높이려고 하는 등 소비 방식이 서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명품 소비가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삼성동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만난 소비자 최 모 씨(39·여)는 "명품은 오래 쓰면 10~20년도 쓸 수 있고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데다 명품은 하나만 들어줘도 패션이 완성된다"며 "싸고 질 나쁜 제품을 여러 개 사는 것보다 명품을 하나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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