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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신율의 정치 읽기] ‘김성태 테러’에서 드러난 극단적 분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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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5월 8일 오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의장·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왼쪽)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운데)를 부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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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은 ‘극단주의의 최고 수준에서 나타나는 폭력 행위’라고 독일 연방정치교육센터에서 발행한 정치학 사전은 정의했다.

이 사전에 따르면 테러리즘은 특정 이념을 구체화시키거나 지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폭력적 수단이다. 조건이 붙는다. ‘조직적인’ 폭력 행위라는 점이다. 즉 테러리즘은 ‘의도성을 포함하는 조직적인 폭력 행위’라 정의할 수 있다.

요즘 ‘외로운 늑대’들의 폭력 행위 역시 테러리즘의 일종으로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적 차원’이라는 측면보다 테러의 의도성이 더욱 중시된다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대한 공격은 테러리즘의 일종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유한국당은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테러를 가한 피의자의 배후를 밝히라고 주장하지만, 배후 여부는 이 행위가 테러인지 여부를 규정하는 데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피의자가 자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테러 직후 “통일을 해보자는 것을 국회에서 비준해달라는 게 어렵나”라고 외쳤다. 가해자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말이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5월 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커터칼을 휘두른 이도 있었고,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친 이도 있었다. 폭력의 경중과 상관없이 모두 테러리즘에 입각한 행위다.

김성태 원내대표 피격 사건을 보면서 테러리즘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피의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조금도 잘못됐다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피의자는 경찰에 체포된 이후 경찰서에 호송되면서 기자들에게 “맞아야 되는, 맞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스스로의 행위가 정당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가해자가 ‘신념’에 입각해 범행을 했고 또한 일종의 영웅적 행위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의 사고 구조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측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생각은 무조건 옳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온다. 이는 이번 폭력 행위가 가해자의 ‘비뚤어진’ 생각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의 산물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일이 다 된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이 국회 비준만 받으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 북한으로 수학여행도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많다. 통일이 되면 북한 어린이들이 게임을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게임 관련 주식에 눈독 들이는 사람도 있고, 북한에 인프라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주가 오를 것이라며 건설주를 사들이는 이도 다수다. 심지어 북한 사람들이 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라면 회사가 잘될 것이라며 식품주에 관심을 갖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그뿐 아니다. 김정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SNS가 범람한다. 심지어 어떤 지식인은 라디오 방송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 “(김정은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된다. 방송을 직접 듣지 못해 발언의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사실이라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쏴 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하고 자신이 발언하는 동안 졸았다고 처형하는 무시무시한 사람을 결코 ‘정상적인 인간’ ‘교육을 잘 받은 인간’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까지 이런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떤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히 ‘김정은 전성시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이분법적 사고가 더해져 이번 같은 무지막지한 폭력 행위가 벌어졌다.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일단 ‘적’으로 몰리는 소수는 물리적, 정신적 테러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제도다. 소수 의견 역시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제도가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의견의 획일화만을 강요할 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포용하거나 역지사지하지 않는다. 이는 민주적 사고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추구하거나 민주주의를 하려는 행동도 아니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국민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반민주적 사고’를 외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사고를 가진 이들은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외칠 뿐, 모든 이들의 이념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하면 어떨까? 미북정상회담 결과가 신통치 않았을 때를 말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 장밋빛 미래를 말하면서 북한을 치켜세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트럼프의 협상 전략일 뿐 실제 마음이 아닐 확률이 높다. 오히려 상대와의 협상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대다수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 회담 전망을 밝게 보는 이들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의 실제적 의도가 지금의 제재 국면을 완화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북한의 속셈에 미국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사태가 그렇게 전개되면 아마도 우리 사회는 반미 물결에 휩싸일 것이다.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던 김정은의 ‘진심’을 미국이 무참히 밟아버렸다는 논리 전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극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북한은 우리와 미국 그리고 일본에 상당 수준의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외우내환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권력에서 좋은 권력이란 있을 수 없다. 권력적 현상인 정치는 미화될 수 없으며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근본적 이해관계는 모두 똑같다. 결국 정치란 권력을 빼앗으려는 측과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측의 갈등이다. 이는 국가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 관해 한 가지 더 말해야겠다. 트럼프는 노벨상에 마음이 ‘꽂혀’ 있는 것 같다. 트럼프는 대내적으로 러시아 스캔들부터 성추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난제 속에 파묻혀 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 돌파구가 바로 미북회담이고 한반도 평화 정착일 수 있다. 집권 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외교적 업적이 없는 트럼프로서는 더욱 여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바로 ‘대충의 합의’ 혹은 ‘포장을 위한 합의’다. 이런 종류의 합의란 북한의 핵모라토리엄을 받아들이고 대신 대륙간탄도미사일 문제만을 완전히 해결하는 경우다. 그러면서 불가침 선언이나 종전 선언을 하고 자신이 한반도 평화를 이룩했다고 떠들면 곤란해지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핵을 이고 살게 될 것이고 일본은 북한의 핵과 중단거리 미사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확률상으로 보면 이번 미북회담은 최상의 성과를 도출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미북회담에서 궁극적인 비핵화를 이뤄 한반도의 평화가 오면 최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분명한 점은 미북회담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는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극단으로 치우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8호 (2018.05.16~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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