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본격 협상]北이 밝힌 핵실험장 폐기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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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북한 외무성은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내 모든 갱도를 폭파하겠다고 공언했다. 1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물론이고 아직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는 것. 핵실험장 경비 인원과 연구원 철수까지 언급하는 등 핵실험장 주변까지 모두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달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언급했다는 전문가 참관은 일단 배제되는 것으로 보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실질적 검증보다는 ‘김정은식 이벤트 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갱도 안쪽 순차적 폭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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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선 “모든 갱도를 폭발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를 완전히 폐쇄한다”며 구체적인 핵실험장 폐기 방법을 밝혔다.
북한이 스스로 밝힌 내용으로 미뤄볼 때 북한은 아직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3, 4번 갱도의 경우 갱도 맨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재래식 TNT 폭약 등을 이용해 폭파하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커 보인다. 폭파 작업을 위해 북한은 앞서 갱도 내 전선 등 핵실험에 필요한 각종 장비 철거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실제로 3, 4번 갱도는 아직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만큼 갱도 안쪽 기폭실에 핵물질이 없어 비교적 안정적인 폭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는 그 길이가 최소 1km에서 최대 2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갱도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폭파한 뒤 갱도 입구에서 100m가량을 남겨두고는 자갈, 모래 등으로 메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통해 1차 봉인하는 것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이 작업까지 마치고 나면 입구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식으로 ‘완전 봉인’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콘크리트로 입구만 메울 경우 우회로를 뚫어 새 갱도를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런 만큼 갱도 맨 안쪽부터 붕괴시키는 방법으로 핵실험을 완전히 중지한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피력하려 할 것이라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 ‘2번 갱도’ 폭파 시 방사성물질 유출 우려
문제는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 폐기 작업이다. 1번 갱도는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 붕괴돼 별도의 폭파 절차가 필요 없다. 하지만 2번 갱도는 직선 형태가 아니라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기 위해 달팽이관 형태의 구불구불한 구조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갱도 내에는 핵실험 충격을 흡수하고 방사성물질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단벽 및 차단문이 10곳 이상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여러 차례 핵실험을 하기 위해 주갱도뿐만 아니라 가지갱도를 여러 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폭파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번 갱도는 여러 차례 핵실험으로 기폭실 주변 차단벽이 붕괴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됐을 수 있다”며 “섣불리 폭파했다가는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추가적인 유출이 없도록 차단벽을 보강한 뒤 콘크리트 타설 등으로 메우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련이 수백 회에 걸쳐 핵실험을 진행했던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도 1990년대 초반∼2000년 순차적으로 갱도를 폐기할 당시 콘크리트 타설을 통해 봉인하는 방식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핵 전문가 없는 폐기
그러나 북한은 이번 현장을 기자단에만 공개하기로 했을 뿐 전문가 참관 여부를 밝히지 않아 검증 시작부터 비협조적인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 외무성은 12일 공보를 통해 “(풍계리) 북부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 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국내(북한) 언론기관은 물론이고 국제 기자단의 현지 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공신력 있게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 참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당초와 달리 전문가 참여를 배제한 것은 아직 미국으로부터 ‘문서화’된 비핵화 보상을 약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실험장 상세 정보 유출을 꺼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이벤트가 아닌 북핵 능력 검증으로 흐를 가능성을 의식한 것이라는 것.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문가를 부르는 것은 또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나 절차가 있을 수 있다. 일이 복잡해지면 (공개) 시일이 더 늦춰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미 회담 일정 등이 빠듯한 만큼 일단 5월 내 폐쇄라는 ‘약속 이행’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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