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은 북·미 적대관계 산물”
적대관계 해소되면 주한미군은
평화유지군·세력균형자 역할 가능
북미 회담 이후 실천이 진리 표준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4월 2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의 결속을 선포하고, ‘세계적인 핵강국으로 재탄생’하여 ‘세계 정치구도의 중심’에 들어섰다고 하면서 체제 안전보장과 비핵화를 교환하는 대타협에 나섰다. 전원회의 결정서에 나타난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국가핵무력 완성’을 이뤘기 때문에 핵실험장을 용도 폐기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이야 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불가역적인 완전한 비핵화를 결심하고 실천에 나섰다고 본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때 ‘진리의 표준은 실천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약속을 실천하면서 비핵화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지만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제재와 압박에 굴복하여 핵실험장 폐쇄에 나선 것이 아니라 핵무력 완성으로 더 이상 실험이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군더더기 없는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남북, 북·중, 북·미 정상회담을 연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과 동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니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3대에 걸쳐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어렵게 개발한 핵을 버린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합리적 의심’일 수 있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만능의 보검’인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비핵화를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추진하는 ‘문·김·트 비핵평화프로세스’는 기존 관념과 경로의존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새 경로를 만들고 있다.
시론 5/14 |
중국과 베트남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이름으로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정책 전환을 위한 사상 해방, 신사고 등 사상이론적 조정을 할 수 있다. 당 전원회의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김 위원장이 특사단과 정상회담에서 하는 말 사이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당의 공식 문헌은 아직 사상이론적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외부 세계를 향해서 하는 공약과 행동은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신사고와 실천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외부 세계와 적대관계를 해소하면 핵을 버리고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사상이론적 조정을 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외부 세계와 적대관계를 유지할 때 형성된 내부 논리와 적대관계가 해소된 이후의 논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가 그렇다. 적대관계가 유지될 때는 철수를 주장하지만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평화유지군, 세력 균형자,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적대관계 유지 여부에 따라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적대관계 유지로 핵무력 완성을 막지 못했다면 적대관계 해소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실현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본심이 무엇이든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지금은 신-구 패러다임 사이에 논쟁이 격심하지만 현실이 바뀌면 낡은 패러다임을 고수했던 사람들도 결국 새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위한 공약 대 공약이었다면,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은 행동 대 행동의 실천 계획을 짜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실천이 진리의 표준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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