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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김구 ‘나의 소원’에는 ‘자유’가 33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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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중략)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누가 한 말일까?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나의 소원'(1947) 제2장 '정치 이념'에서 한 말들이다. '나의 소원' 전체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무려 33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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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동상으로 표현의 자유를 논한 미술작품 ‘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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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과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두면서도 헌법과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싶어하는 이들은, 왜 백범의 이 말은 신경 쓰지 않는지 궁금하다. 백범이 말한 자유는 정치, 사상, 표현의 자유이고, 과거 군부독재 시대에는 그런 자유를 탄압하면서 '자유'를 오로지 '경제적 자유'(사실 자유시장경제보다 중상주의에 가까웠지만) 및 '반공'의 뜻으로 썼기 때문에 "자유의 이미지가 나빠져서"라고 대답하려나?

민주화 이전 정권들이 '자유'를 반쪽짜리 의미로 쓴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인류 근대화의 시발점인 개개인의 '자유'의 본래 의미가 바뀌는가? 19세기 정치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평생에 걸쳐 탐구했듯, '자유'는 사상, 표현, 정치, 시장의 자유를 아우르는 개념이며, 그 각 분야의 자유가 서로를 지탱하고 북돋우는 동시에 때로 충돌하며 서로를 견제한다.

J. S. 밀은 20세기에 전체주의적으로 실현된 공산주의가 아닌 19세기의 이상적 공산주의 모델조차도 “과연 인간 본성의 다양성과 부합하는가”라고 물으며 “평등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라는 건 가장 고귀한 인간 본성의 박탈”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 권리를 위한 제도, 아동 보호를 위한 국가의 가정 개입, 무상 공공교육 등을 선구적으로 강력히 주장했다. 바로 자유를 북돋우기 위한 자유의 견제였다.

그러한 J. S. 밀이 가장 경계한 것은 “물리적 제재든 여론의 도의적 강압이든”을 통해 “삶과 영혼의 자유”가 통제되는 것이었다. 백범 또한 그것이 가장 무서운 독재,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가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자유라는 보물을 얻었지만 그에 따른 비용인 각종 사회갈등도 보고 있다. 종종 자유와 자유의 충돌도 목격한다.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 덕분에 여론이 활성화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론의 쏠림이 소수의견을 침묵하게 압박하는 ‘여론 독재’의 우려도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J. S. 밀과 백범이 말한 자유의 근본적 의미를 되새기고 그 구체적 실행의 복합적 면모를 활발히 토론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단지 ‘민주주의’ 제도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크고 복합적인 개념 ‘자유’를 논해야 한다. 백범이 “소련식 민주주의”를 비판했듯 ‘민주주의’라는 말로만은 ‘자유’를 담아낼 수 없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겠다고?

끝으로 백범의 ‘나의 소원’ 제2장 ‘정치 이념’의 전반부 전문을 첨부한다.

2. ‘정치 이념’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절대로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하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저 레닌의 말 모양으로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는 일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제 또는 독재라 하고, 일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어니와,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거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이어니와 이것은 수백년을 계속하였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일의 나치스의 일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집권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눌려 죽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통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즉 헤겔에게서 받은 변증법,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 이 두 가지와, 아담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을 가미한 마르크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믿어, 공산당과 소련의 법률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데 모아서 마르크스의 학설에 일점일획(一点一劃)이라도 반대는 고사하고 비판만 하는 것도 엄금하여 이에 위반하는 자는 죽음의 숙청으로써 대하니, 이는 옛날에 조선의 사문난적에 대한 것 이상이다.

만일 이러한 정치가 세계에 퍼진다면 전 인류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하나로 통일될 법도 하거니와, 설사 그렇게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히 잘못된 이론일진대, 그런 큰 인류의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학설의 기초인 헤겔의 변증법 이론이란 것이 이미 여러 학자의 비판으로 말미암아 전면적 진리가 아닌 것이 알려지지 아니하였는가. 자연계의 변천이 변증법에 의하지 아니함은 뉴튼, 아인슈타인 등 모든 과학자들의 학설을 보아서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후략)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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