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살 사망자 289명 '심리부검' 공개
사망자 92%는 미리 자살 경고 신호 보내
유가족 21%만 경고 인지, 알아도 대처 X
편견 우려해 유가족은 자살 사실 못 알려
서울 마포대교에 세워진 자살 위로 동상.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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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밥값도 못 하는 한심한 놈”이라고 나무라자 A씨는 주먹을 휘둘렀고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부모님에게 ‘자식 노릇 못 해 죄송하다’는 문자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고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부모님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대인 관계 문제와 가족 갈등, 취업 문제 등이 있었지만 자살로 이어질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A씨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해마다 1만3000명 안팎이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남은 이들은 대부분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라는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자살로 숨진 사람 10명 중 9명 이상은 주변에 자살 경고 신호를 미리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은 대인관계, 중장년층은 돈, 노인은 건강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살 시도자의 손.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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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결과 자살로 숨진 사람의 92%는 사망 전에 미리 자살 징후를 드러내는 경고 신호를 보냈다. ”죽고싶다“고 말하거나 우울감을 호소하고 신변 정리를 미리 하는 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숨졌다기보다는 주변에 미리 자살할 수 있다는 ‘사인’을 보냈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가족의 21.4%만 이러한 경고 신호를 인지했다. 그나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유가족들도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걱정은 했지만 자살할 거라 생각하지 않음(36.8%), 대수롭지 않게 생각함(21.1%) 등이 상당수였고 전문기관 정보를 알려줌(12.3%)처럼 적극 대응하는 일은 적었다.
극단적 선택으로 이끈 스트레스는 한둘이 아니라 복합적이었다. 정신건강 문제(87.5%)와 가족 관계(64%), 경제적 문제(60.9%ㆍ이하 복수응답) 등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특히 자살을 경고하는 신호는 연령대별로 다른 특성을 보였다. 청년기(19~34세)에는 연애 관계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어린 시절 겪은 큰일 등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었다. 중장년층(35~64세)은 부채와 직장(실직) 같은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65세 이상 노인은 신체적 건강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혼자 지내거나 친구가 거의 없는 ‘고독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들을 잃은 자살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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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온전히 아픔을 떠안고 있는 이들에겐 ‘사회적 편견’이 또 다른 짐으로 다가왔다. 유가족의 63.6%는 고인이 자살로 숨졌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대방이 받을 충격이나 사회적 시선 등을 고려해서 유족의 부모와 조부모, 자녀 등 가까운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한 경우도 상당수였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주변의 관심으로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가족ㆍ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언어ㆍ행동의 변화를 보이면 반드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나 정신의료기관, 자살예방전문기관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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