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속 영상 보며
고기잡이·장보기 체험
뇌 신경 회복, 근력 향상
가상현실(VR)은 질병의 치료 효율을 높여주는 새로운 무기다. 현실과 유사하게 구축한 인공적인 환경에서 사람과 컴퓨터가 상호 작용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다. 게임을 하듯 몸을 움직이면서 둔해진 신체 움직임을 회복한다. 아바타와 대화하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잘못된 감정·행동을 교정하기도 한다. 주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가상현실 치료를 현장에 적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첨단 기술이 접목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인 가상현실 치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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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몰입감 높여
재활 훈련은 같은 동작을 반복해 신경을 회복하고 근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손으로 물건을 옮기거나 짧은 거리를 걷는 정도다. 가상현실은 지루하고 힘든 재활 훈련에 ‘재미’를 더해준다. 바닷속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건널목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식이다. 자신과 상태가 비슷한 사람과 경쟁을 펼칠 수도 있다.
뇌졸중으로 한쪽이 마비된 환 자가 물고기 잡기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몸을 더 많이 움직여 재활 훈련의 치료 효과를 높인다. |
효과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잇따라 마련되고 있다. 이스라엘 텔아브비의대 마이렐만 교수 연구팀은 한쪽 하반신이 마비된 뇌졸중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기존 재활 치료와 가상현실 운동 재활 치료의 효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상현실 운동 재활 치료군은 이동 거리가 치료 전 1.2㎞에서 치료 후 2.8㎞, 보행속도는 초속 0.53m에서 0.63m로 늘었다. 반면 기존 재활 치료군은 큰 변화가 없었다(Stroke, 2009).
환자 공포증 극복 도와
기존에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상담하면서 치료한다. 문제는 치료를 시작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눈을 감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피한다. 현장 노출은 환자의 반응 통제가 어렵고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재현이 힘들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남성이 가상현실로 연출한 상황을 경험해보면서 발표공포증을 줄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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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가상현실 노출에 그치지 않는다. 그다음 단계는 개인별 수행 능력에 맞춰 불안·공포 심리가 심해지는 상황에 자신의 반응이 불러올 결과를 간접 경험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문제 행동을 교정한다. 의료진은 맥박, 눈 깜빡임, 손발 움직임, 문제 해결에 걸리는 시간·방법 등을 분석해 합리적 대응법을 제시한다. 실전에 앞서 가상현실로 연습도 가능하다. 가상현실에서는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훈련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다.
해외 관광명소나 자연 경관을 살펴보는 가상현실 영상은 입원 환자의 시선을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 정서적 안정감을 높인다. |
가상현실을 이용한 공포증 극복 효과는 뛰어나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의학과 김재진 교수팀은 고소·발표 공포증이 있는 사람 82명을 대상으로 2주 동안 8차례에 걸쳐 해당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고 공포증의 불안 심리 완화 정도를 분석했다. 이들은 사방이 트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40층·60층 오르기, 초고층 건물 옥상 걷기, 높은 산 중턱에 걸쳐져 있는 구름다리 건너기, 상사와 식사, 3대 1 취업면접, 프로젝트 발표 등의 상황을 가상현실로 체험했다. 그 결과 고소 공포 완화 훈련 대상자의 87.5%(35명), 발표 공포 완화 훈련 대상자의 88.1%(37명)의 불안감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고소공포증지수(AQ)가 가상현실 치료 전 48점에서 치료 후 36.7점으로 평균 23.5% 개선됐다. 발표공포증 역시 사회적 상호 작용 불안척도(SIAS)가 치료 전 35.4점에서 치료 후 28.8점으로 평균 18.6% 감소했다.
가상현실 치료를 이용할 때 주의할 점도 있다. 장시간 이용하면 눈으로 보는 것과 뇌로 판단하는 것의 차이가 누적돼 시각적 피로감을 유발한다. 어지럼증·구토·메스꺼움 같은 부작용을 겪는다면 즉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글=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분당차병원,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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