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
건설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작년말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2624만명 중 201만명(7.7%)이 건설업 취업자였다. 게다가 건설 일자리의 70% 이상은 현장 기능인력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일자리다. 경기침체나 실업률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건설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다르다. 지난 3월에 실업률이 4.5%로 17년 만에 가장 높았지만 건설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소식은 없다.
또 지난 3월 말에 정부는 2019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했다. 내년 예산규모는 올해보다 약 6%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능하면 완공 위주로, 중점 투자사업 위주로 지원하고, 신규 보다는 노후 시설물 개선, 양적인 투자보다는 질적인 기능개선이나 혁신성장 관련 분야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한다.
만약 정부의 중기(2017~2021) 재정계획대로 SOC예산을 연평균 7.5%씩 줄인다면 내년 SOC예산은 17조원에 그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전체 예산은 해마다 6∼7%씩 늘어나는데, SOC예산은 7.5%씩 줄이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
복지예산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한정된 예산의 배분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SOC예산이 뒤로 밀리다 보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SOC를 비롯한 우리 인프라 수준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인프라 충분론’은 우리 인프라 스톡이 양적인 측면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국도, 철도 연장(㎞)은 선진국 중에서도 상위권이라는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어떤 지표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국토면적만이 아니라 인구밀도까지 감안한 국토계수당 도로 연장은 하위권에 속한다. 도로나 철도 연장당 여객이나 화물 수송실적을 의미하는 부하지수로 평가해도 양적인 측면에서 충분하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또한 인프라는 양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2015년에 이미 98.8%수준이었다. 하지만 전국 평균 상수도 누수율은 10.9%였고, 제주도는 40%를 넘는다. 상수도 보급률이 100%라고 해도 누수율이 이렇게 높다면 질적인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크다. 특히 1970∼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구축된 30년 이상된 인프라 시설은 모두 개선을 필요로 하는 노후 시설물로 볼 수 있다.
선진국 사례를 볼 때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건설투자도 줄어들었다. 그러니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이한 우리도 이제는 인프라 투자를 줄이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OECD국가들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다시 인프라 투자가 늘었다. 시설물 노후화로 인해 유지보수시장이 신규시장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싱가포르는 글로벌 인프라 경쟁력 2위로 평가되고 있는데도 최근 들어 인프라 투자를 더 늘리고 있다.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인프라 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를 맞아 미래의 인프라 수요까지 감안하면, 우리 인프라 수준이 충분하다는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자율주행차, 하이퍼 루프 등을 비롯한 새로운 교통시설의 등장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스마트 시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마트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인 과제다.
이제는 ‘인프라 충분론’이 허상임을 인식해야 할 때다.
인프라 실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조사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국가인프라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안전 제고를 위한 노후 인프라 개선사업을 확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과 지역경제 및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도 크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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