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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윤리적 비판,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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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연 포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다. 4월 27일에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머지않아 북미회담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화가 잘 이루어지면 작년부터 우리를 짓눌러온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상황의 완화와 함께, 비록 앞으로도 많은 굴곡이 예상되기는 하나 통일의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민족의 통일을 위한 준비의 하나로 지금까지 많이 오해되어 온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민족주의 논의는 서양의 '근대주의적 해석'의 틀을 따라 민족의 근대성에 초점을 맞추어 민족의 장구성을 부정하고, 민족주의를 악마화하는 것이었다. 민족을 20세기에나 들어와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로 보고, 민족주의는 억압적이고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IMF 이후 한국사회가 급격히 받아들인 신자유주의의 시대 상황과도 잘 들어맞았다. 민족의 가치를 절하하고 민족주권을 약화시키는 일과 국경개방을 요구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잘 어울린 것이다.

그러나 20년 만에 시대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은 이론적인 면에서 점점 더 많은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는 그 본거지인 미국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등장과 함께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하고 보호무역주의가 점점 강화되면 될수록 나라마다 국경을 걸어 잠그고 민족경제를 부르짖게 될 것이다.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으나 윤리적인 비판도 그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것이 과도한 윤리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 연구를 처음 시작한 선구자들인 영,미 학자들의 전통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전쟁의 원인을 독일민족주의가 과대 팽창하여 공격성을 보인 데에서 찾았다. 일방적인 주장이기는 하나 패전국인 독일의 학자들은 이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독일만이 아니라 교전국 쌍방 다수에게 있으며, 19세기 말에 민족주의가 전 유럽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을 보면 이것을 적절한 설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표면적으로는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전쟁의 시작이었으므로 2차 세계대전도 독일이 일으킨 전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전 세계적인 식민제국을 지키기 위해 유럽에서 독일에게 양보하려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유화정책, 전쟁 직전에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를 독일과 양분한 소련의 이기적 태도 등 다른 나라들의 전쟁 책임은 묻혔다. 게다가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은 독일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고, 독일인들은 입이 열 개라도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또다시 '독일 민족주의'라는 프레임이 작동했다. 물론 히틀러가 독일 민족주의를 주장하기는 했으나 유대인 학살에는 인종주의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럼에도 양자를 구분할 필요조차 없이 도매금으로 비난이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 연구에서 영,미학자들은 민족주의를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누는 방식을 채용했다. 전자는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에, 후자는 독일을 포함한 동유럽과 다른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적용시켰는데 이는 과거의 윤리적 비판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시민적 민족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과 민족주의로서 민주주의 체제와 결합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그 민족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경향이 있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적이었다. 반면 종족적 민족주의는 구성원의 동의가 아니라 혈통, 언어, 문화, 역사 등 외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는 민족과 민족주의이므로 독재 같은 비민주적 정체와 결합하기 쉽고 국내 소수파에 대한 억압, 외부세계에 대한 공격성 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유대인 학살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했다.

전후에 식민지해방운동이 벌어지며 아시아,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 새로운 민족들이 탄생하고 민족주의도 활발해졌으나 서양학자들은 이런 분류에 따라 제3세계 민족주의를 후자에 넣어 부정적으로 보고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당연히 강대국의 횡포에서 벗어나려는 제3세계 민족주의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불가능했다. 에릭 홉스봄 같은 뛰어난 좌파역사가가 제3세계 민족주의를 불편해하고 경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 시민적 민족과 종족적 민족의 구분은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시민적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대표적 국가의 하나인 프랑스를 보자. 1789년의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인민주권론에 따라 시민들의 동의로 새로 민족을 구성했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이론에만 그칠 뿐이다. 실제로는 프랑스왕국의 국경 안에 살아온 사람들의, 오랜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종족성에 의존한 것이다. 그것 없이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서만 민족을 구성한다면 왜 새로운 시민적 민족의 형성이 프랑스의 기존 국경에 제약을 받았겠는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고 국경 밖의 다른 민족이라도 동의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 실제로 혁명가들은 '민족 불가분 원리'에 따라 분리를 금지시켰다. 이것을 동의에 의한 민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북아메리카 이민 국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형식적이지만 처음에는 헌법에 대한 동의라는 형태로 시민적 합의의 형식을 갖췄다고 해도 두 민족의 바탕을 만든 것은 주류 종족인 영국계나 프랑스계 주민들의 종족성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이민종족들의 가세로 점점 외연이 넓어지며 오늘날의 두 민족을 형성한 것이다. 또 나중에 이민을 들어온 사람들이 충성서약을 통해 미국이나 캐나다 민족이 되기로 합의한다고 가정해도 몇십 년만 지나면 이들은 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과 혈연을 맺으며 기존 종족성 안으로 포괄되거나 아니면 캐나다 퀘벡의 경우처럼 독자적인 종족성을 유지한다. 순수한 시민적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적 종족과 종족적 민족을 구분하는 이론은 영,미계 서양인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유포되어 온 것으로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특히 미국인들은 이 시민적 합의라는 신화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애국주의 담론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미국의 애국주의는 시민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민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윤리적으로 본다. 반면 다른 나라들의 민족주의는 종족성에 의존한 것으로 비윤리적으로 규정한다. 이 애국주의-민족주의의 구분은 시민적 민족주의-종족적 민족주의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미국인들의 자기만족적 주장일 뿐이다. 실제로 미국인들이 9,11 테러 이후에 미국 국기를 내세우고 애국주의를 부르짖으며 한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뿐이다. 이것은 아무 명분 없이 약소국을 짓밟은 것인데 여기에 윤리적인 요소가 있나? 전혀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인들의 이런 기만적인 선전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제3세계 민족주의뿐 아니라 자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서양인들이 민족주의에 대해 하는 것과 똑같이 무차별적으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폄하하고 비난한다. 그러니 젊은 층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올드(old)'하다며 외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민족주의에는 긍정적인 요소뿐 아니라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등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민족주의가 가져올 수도 있는 억압성과 배타성은 경계하고 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족 통합과 민족의 자주성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강대국들에게 위협받는 약소국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기이다. 왜 부정적인 요소만을 끄집어내어 민족주의를 백안시하나. 이래 가지고 과연 통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지적 노예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자 :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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